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서늘해졌다. 출근길 가로수도 하나둘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환절기 비염을 달고 사는 필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코를 훌쩍이고 있으니, 가을이 온 게 확실하다.
최근 30대 부부 고객의 태아보험 상담을 위해 충청권을 찾았다. 필자는 태아보험을 설계하기 전 꼭 엄마 아빠 보장부터 살펴본다. 아이 보험만큼 중요한 게 부모 보험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프면 아이도 흔들린다.
남편분에 이어 아내분의 보험증권을 펼쳤는데 2019년에 가입한 CI보험이 보였다. 월 보험료는 20만원가량. 그 안에 진단비와 수술비 특약이 잔뜩 붙어 있었다. 상당수는 갱신형이었다.
“고객님, 이 보험이 어떤 보험인지 알고 가입하셨어요?”
아내분은 멋쩍게 웃으셨다. 그 당시 보험이 너무 없다는 말에, 엄마 친구분께 급하게 부탁드려 가입했다고 했다. 큰 병에 걸리면 뭐든 다 나온다는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필자가 정말 많이 듣는 이야기다. 지인을 통해, 급하게, 좋다는 말만 듣고 가입한 보험. 7년 동안 매달 20만원씩 보험료를 내면서도 내용은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CI보험은 ‘중대한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핵심은 ‘중대한’이라는 단어다. 일반 암보험은 암 진단만 받으면 진단비가 지급되지만, CI보험의 주계약은 약관에서 정한 ‘중대한 암’, ‘중대한 급성심근경색’, ‘중대한 뇌졸중’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진단명이 같아도 상태나 조건에 따라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설명을 들은 아내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파도 보험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라신 눈치였다. 그래서 장점도 함께 말씀드렸다.
CI보험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 큰 병이 찾아왔을 때 사망보험금의 일부를 미리 당겨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치료비에 생활비까지 필요한 순간, 목돈이 들어온다는 건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 또 언젠가 가족에게 남겨줄 사망보장도 함께 들어 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첫째, 지급 기준이 까다롭다. 요즘은 건강검진으로 암을 초기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기라면 ‘중대한’ 기준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주계약 보험금은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둘째, 미리 당겨 받은 만큼 나중에 사망보험금은 줄어든다. 공짜로 더 얹어주는 돈이 아니라는 얘기다.
셋째,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사망보장이 함께 들어 있어 일반 진단비 보험보다 부담이 크다.
이 고객의 경우 또 하나 살펴봐야 할 부분이 갱신형 특약이었다.
갱신형은 처음엔 보험료가 저렴하다. 하지만 정해진 주기마다 나이와 손해율을 반영해 보험료가 다시 계산된다. 지금은 20만원이지만, 갱신 때마다 오를 가능성이 크다. 정작 보장이 가장 필요해지는 40~50대에 보험료 부담이 가장 커지는 구조다.
옆에서 듣던 남편분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셨다. 아이가 태어나면 들어갈 돈이 한두 군데가 아닐 텐데, 걱정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아내분은 보험료 부담이 계속될 것 같다며 해지를 고민했다. 기존보다 보험료는 낮추면서 비갱신형으로 바꾸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필자는 먼저 손해부터 설명했다. 7년간 낸 보험료가 있지만, 지금 해지하면 돌려받는 돈은 그보다 훨씬 적다. 새 보험에 가입하면 7년 전보다 나이가 많아진 만큼 보험료 조건도 달라진다.
그래도 그 방향을 원한다면 비갱신형으로 보험료를 낮춘 설계를 만들어 기본 보험과 비교해 볼 것을 권했다. 다만 임신 중에는 가입이 제한되는 보장도 있어, 출산 후 상황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두 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분은 오늘 아니었으면 보험료가 오르는 줄도 모르고 계속 냈을 거라며 머쓱해하셨다. 아내분도 늦게라도 알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보험은 가입한 순간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해야 의미가 있다. 누가 권했는지보다, 내가 알고 가입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환절기가 되면 감기 걸릴까 몸부터 챙기게 된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바뀌는 지금, 내 보험이 제대로 나를 지켜주고 있는지 한 번쯤 점검해 보길 권한다.
윤정원
메타리치 MRC사업단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