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요양병원 접수를 마치고, 알코올 냄새가 가득한 병실로 아버지를 안내했습니다. 삐걱거리는 침상에 아버지를 부축해 올렸을 때, 아버지는 서둘러 침상 안쪽으로 몸을 누이셨습니다.
그리고 수분기 하나 없는 마른 피부 위로 표백된 흰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리더니 이내 얼굴을 덮으셨습니다. 하지만 살포시 내려앉은 이불깃 너머로, 미처 감추지 못한 아버지의 눈빛이 보였습니다.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 가족과 영영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푹 꺼진 눈가 위로 불안한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를 가만히 올려 보고 있었는데, 나는 끝내 그 눈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불안과 낯섦에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나 자신의 불안만을 마주했을 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날의 나는 단 한 순간도 아버지의 입장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늙고 병들어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한 인간의 모습도, 낯선 병실에서 삶의 마지막에 불안해하며 홀로 흔들리는 한 사람의 자리도, 나는 그저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초라한 자식의 모습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아버지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병실의 간이의자에 앉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고작 아버지에게 내 얼굴을 몇 번 보여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두고 돌아서야 하는 내 죄책감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머물렀던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돌본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두고 떠나야 하는 나 자신을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초조한 마음’에서 연민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생겨난 마음의 충격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려는 본능적인 조급함. 그것은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공감이라기보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는 초조함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때 어떤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가장 은밀한 동력은 때로 이기심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소극적이고 나약한 사람일수록 겉으로는 헌신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당시 병실을 지키던 내 모습이 그랬는지 모릅니다. 가족들에게 내가 얼마나 책임감 있고 희생적인 아들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그 한마디의 면죄부를 얻고, 내게 드리워진 불안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버지의 고통과 외로움, 그 불안까지 온전히 함께 짊어질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저 본능적으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처연한 눈빛으로부터 지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며칠 간의 머무름은 아버지를 지킨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그럴듯한 모습으로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비겁하게 서성이던 시간의 끝에 아버지가 운명하시던 날이 찾아왔습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아버지는 힘겹게 손을 들어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메마른 눈빛으로 내 눈을 마주하며 낮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애썼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거라.”
그것은 자식에게 남긴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였고, 마지막까지 자식을 걱정했던 아버지의 배려였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올라가거라.”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내게 면죄부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그 말을 붙잡고 서둘러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걱정하며 품어 주셨는데, 나는 아버지의 임종이라는 무거운 진실 앞에 또 한 번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도망치듯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단순한 귀경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끝까지 견뎌내지 못하고, 내 안의 초조함에 굴복해 버린 한 나약한 인간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었던 아버지를 영영 남겨두고 떠나온 가장 참담하고, 가장 돌이킬 수 없는 도망의 길이었습니다.
김태우
한화생명 63WM센터장 |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보험신문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