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대한민국 보험업계에 등록된 보험설계사는 71만명을 넘어섰다. 해마다 설계사 수가 늘면서 보험영업 인력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영업 현장이 직면한 뼈아픈 현실과 전례 없이 차가운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에 가려져 있던 영업 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보험업계는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동안 보험영업 과정에서 관행처럼 활용돼 온 편법 영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관리 강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데이터베이스(DB) 영업 과정에서 불거진 개인정보 보호 위반 단속이다.
최근 공공기관이나 헬스케어 업체를 사칭해 불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무단 유통해 부당한 승환계약을 유도하는 행위가 다수 적발됐다. 이에 따라 당국은 정보의 수집부터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브리핑 영업도 예외가 아니다. 직장이나 특정 단체를 방문해 법정의무교육이나 무료 강연을 빙자해 허위 및 과장 광고로 상품을 판매하던 방식 역시 강력한 단속과 제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기반의 영업 역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적용을 받는다.
영업 목적의 글은 엄격한 사전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향후 이러한 온라인 광고 심의에 건당 심의 수수료까지 부과될 예정이다.
과거처럼 연락처를 구매해 전화를 돌리거나, 사람을 모아놓고 공포심을 조장해 계약을 하거나, 인터넷 공간에 무분별하게 상품 스펙을 올려 고객을 유인하던 쉬운 영업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이다.
사방을 둘러싼 규제의 벽 앞에서 71만명에 달하는 설계사들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야 하는가. 현재 영업 현장에는 무분별한 인력 채용의 결과로, 본업이 아닌 부업이나 투잡이라는 이름으로 전문성 없이 유입된 인력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며칠간의 단기 교육만을 수료한 채 현장에 투입된다. 고객의 재무 상태나 생애 위험을 깊이 있게 분석하기보다는, 단순히 소속 회사에서 내려온 특정 상품의 장점만을 읊으며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객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취업과 결혼, 출산, 은퇴 등 생애주기의 각 단계마다 직면하는 재무적 상황과 신체적 위험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단편적인 상품 지식만으로 고객의 인생 전반에 걸친 거대한 위험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변화하는 세제와 복잡해지는 의료 환경, 그리고 점차 세분화되는 금융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상품 세일즈를 넘어선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수적이다.
결국 해답은 가장 고전적이고 근본적인 ‘정도(正道) 영업’과 ‘장기간의 고객 관리’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정도 영업이란 눈앞의 단기 수수료를 위해 불필요한 계약을 강요하거나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삶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가장 필요한 보호막을 적재적소에 제공하며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설계사들은 반드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질병의 통계적 추이를 분석하고, 거시 경제 지표의 흐름을 읽으며, 관련 법규와 세제의 변화를 성실하게 학습해야만 고객의 삶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그리고 시장이 투명해질수록 얄팍한 화술이나 불법적인 DB에 의존하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엄격해진 규제와 당국의 시장 정화 노력은 결국 설계사들에게 진짜 실력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단순한 상품 판매업자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생애 주기 전반의 위험을 관리하는 진정한 금융 전문가로 거듭날 것인가. 71만명이라는 숫자는 개인의 생존을 결코 보장해 주지 않는다. 척박해진 영업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책을 펴고 전문성을 갈고닦으며, 정도 영업의 길을 걷는 공부하는 설계사들만이 다가올 새로운 금융 시장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남을 것이다.
구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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