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위험을 더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한국인 치매 코호트 자료를 분석해 기존 3단계(인지정상-경도인지장애-치매) 분류를 넘어 세분화된 6단계 예후 체계를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없는 상태에서 점차 경도인지장애를 거쳐 치매로 진행하는 연속적인 경과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인지 단계에 있더라도 개인에 따라 질병의 진행 속도나 악화 위험은 크게 다르다. 특히 최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도입과 조기 개입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고위험군을 정확히 가려내 장기 경과를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연구진은 국내 노인성 치매환자 코호트 참여자 1,263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여기에는 인지기능 검사 결과뿐 아니라 혈액 바이오마커, 뇌 자기공명영상(MRI), 나이, 성별, 교육 수준, 유전자(ApoE ε4) 보유 여부 등 다양한 정보가 포함됐다. 이를 토대로 연구진은 인지정상(CU) 224명, 경도인지장애(MCI) 779명, 치매 260명을 각각 분석해 질병 진행 위험을 구분하는 주요 요인을 찾아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 진행 위험을 0기부터 IVB기까지 총 6단계로 나누는 '통합 예후 병기 체계'가 완성됐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인지기능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 저하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혈액 내 pTau217 단백질은 인지정상부터 치매까지 모든 단계에서 예후 예측에 핵심적인 지표로 확인됐다. 인지정상군에서는 혈액 GFAP와 pTau217, 경도인지장애군에서는 뇌 MRI 해마 용적과 pTau217, 치매군에서는 연령과 pTau217이 주요 구분 요인으로 작용했다.
연구진은 이 체계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국 알츠하이머병 영상 이니셔티브(ADNI) 코호트 290명의 자료로 외부 검증을 실시했다. 검증 결과 초기와 중간 단계에서 병기가 높아질수록 예후가 나빠지는 일관된 경향이 재현됐다. 다만 후기 단계는 ADNI 코호트 내 대상자 수와 사건 수가 제한적이어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의 현재 상태 평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향후 질병 경과를 예측할 수 있는 연구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같은 인지 단계에서도 진행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장기추적 코호트에 축적된 여러 정보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를 토대로 한국인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질병 경과를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예후 예측 연구를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국립보건연구원 만성질환융복합연구부 김원호 부장은 "이번 성과는 치매 코호트에 축적된 임상정보와 영상, 혈액 바이오마커 자료를 연계 분석해 도출한 결과"라며 "앞으로 유전체, 생체자원, 생활습관 정보 등을 추가로 연계해 치매 진행 예측모델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맞춤형 예방·관리 전략 개발로 이어지도록 후속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예후 체계는 치료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임상 도구가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 알츠하이머병 진행 위험을 구분하기 위한 예측 체계다. 따라서 실제 치료제 사용 여부는 아밀로이드 병리 확인, 치료 적합성 평가, 안전성 평가 등 별도의 임상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향후 진행 위험이 높은 대상자를 조기에 선별하고, 추적관찰 및 상담의 우선순위를 정하며, 조기 개입 연구를 설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질병관리청 임승관 청장은 "치매는 고령사회에서 국민 부담이 큰 대표적인 뇌질환으로, 조기 발견뿐 아니라 진행을 늦추기 위한 과학적 근거 마련이 중요하다"며 "질병관리청은 한국인 특성을 반영한 치매 연구자원을 지속적으로 축적·개방해 치매 극복과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이 추진하는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사업(BRIDGE)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BRIDGE는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예방, 치료를 위해 여러 코호트를 통합하고 연구자원을 개방하는 국가 인프라 사업이다. 연구에는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한 전국 18개 병원이 참여했으며, 65세 이상에서 발병한 알츠하이머병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및 경도인지장애 환자, 주관적 인지기능 장애 환자 등을 대상으로 임상정보, 인체 자원, 뇌영상,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 활용된 노인성 치매환자 코호트는 2021년 4월부터 구축이 시작돼 현재 2단계 연구가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