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세우며 관련 조직과 운영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다만 ESG 중요성이 커지는 만큼 단순 보고 체계를 넘어 실제 의사결정과 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발간한 ‘2025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ESG 전략과 목표 수립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ESG위원회를 중심으로 ESG경영위원회와 ESG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주요 전략 과제를 점검하고 전사 차원의 ESG 경영을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ESG위원회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ESG 경영 주요 사항을 심의·보고받는 역할을 맡고 있다. ESG 전략 수립과 목표 설정, 추진 현황 등을 관리하는 기능도 담당한다.
신한은행은 ESG를 지속가능한 성장과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 규정하고 있다. 채은미 ESG위원장은 보고서를 통해 ESG를 “선택적 가치가 아닌 지속적 신뢰 확보와 경쟁력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 ESG 사업 확대에도 의결안건은 ‘0건’
신한은행은 녹색금융 확대, 상생금융, 취약계층 지원, 탄소중립 사업 등 다양한 ESG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기업대출 심사에 반영하고 있으며 소상공인 지원과 청년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ESG 경영의 최상위 의사결정기구인 ESG위원회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의문점도 적지 않다.
신한은행 ESG위원회는 지난해 총 4차례 개최됐으며 심의안건 1건, 보고안건 17건 등 총 18건의 안건을 검토했다. 하지만 의결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주요 안건 역시 ESG 추진 현황 보고와 규제 대응, ESG 보고서 발간 관련 내용 등이 대부분이었다.
ESG 사업은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ESG위원회가 어떤 사안을 결정하고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셈이다. ESG를 경영 핵심 전략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위원회 운영은 보고와 점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ESG는 단순 사회공헌을 넘어 투자와 여신, 내부통제, 소비자보호, 기후 리스크 관리 등 금융회사의 핵심 의사결정과 연결되는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도 최상위 ESG 기구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ESG 거버넌스의 실효성에 의문을 남긴다.
■ “공시 중심 넘어 금융 의사결정으로 이어져야”
전문가들은 현재 금융권 ESG위원회가 공시와 보고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금융소비자단체 관계자는 “현재 금융권 ESG위원회는 공시와 보고 중심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다”며 “실질적으로 어떤 ESG 금융을 추진할 것인지, 어떤 투자 원칙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환경·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거나 투자 심사 과정에서 ESG 요소를 적극 반영하는 사례가 확대되고 있다. 반면 국내 금융권은 여전히 공시와 조직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현재의 ESG위원회가 실질적인 경영 의사결정 기구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ESG 사업 규모나 보고서 분량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투자와 여신, 리스크 관리 과정에서 ESG 원칙이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다.
은행권이 ESG를 미래 경쟁력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제 시장의 관심은 ‘얼마나 많은 ESG 사업을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ESG위원회가 보고 기구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의사결정 기구로 자리 잡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