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 연장은 피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됐다. 평균수명은 길어졌고,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끊기는 기간도 부담스럽다.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중장년이 더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방향에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정년이 늘어나더라도 노후가 저절로 안정되지는 않는다. 월급을 받는 기간은 길어질 수 있지만, 퇴직 후 필요한 생활비와 소득원, 건강과 일상은 별개의 문제다. 준비가 없다면 결국 달라지는 것은 퇴직 날짜뿐이다.
오히려 정년 연장 논의 자체가 긴장을 늦추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급여가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에 연금과 부채, 보험료와 고정비를 살피는 일을 미루기 쉽고, 퇴직 후 무엇을 할지도 막연한 계획으로 남겨두게 된다. 정년이 몇 세로 정해지든, 남은 근무 기간은 현재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직장을 떠난 뒤에도 유지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을 갖추는 기간이어야 한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퇴직 후 매달 반드시 나가는 돈이다. 관리비, 통신비, 보험료, 차량비, 각종 회비와 자녀 지원비를 정리하면 쉽게 줄일 수 없는 비용이 드러나는데, 여기에 식비와 의료비를 더해야 실제 필요한 생활비가 보인다. 막연히 얼마면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과 통장에서 실제로 빠져나가는 금액을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출 조정도 소득이 줄어든 뒤 시작하면 부담이 커진다. 가령 퇴직과 동시에 자동차를 처분하고 모임과 여가를 끊으면 생활 전체가 갑자기 좁아졌다고 느끼기 쉽다. 월급이 들어오는 동안 사용하지 않는 구독을 정리하고, 보험과 주거비를 점검하며, 줄여도 불편하지 않은 항목을 미리 찾아두는 편이 낫다. 그래야 퇴직 후에도 유지할 수 있는 소비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준비는 자격증보다 수요를 먼저 살펴야 한다. 특정 교육을 이수했다고 곧바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영업이나 고객관리 경험이 있다면 상담, 교육, 조직관리 같은 일과 연결할 수 있지만, 누가 그 일을 필요로 하고 얼마를 지불할지는 직접 부딪쳐 확인해야 한다. 강의 한 번, 상담 한 건, 원고 한 편이라도 비용을 받고 제공해 보면 자신의 경력 가운데 무엇이 밖에서 통하는지 알 수 있다.
생활 방식도 미리 바꿔볼 필요가 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출근 시간과 회의가 하루를 대신 짜주지만, 퇴직하면 이제 모든 시간을 스스로 계획해야 한다. 주중에 하루쯤 일부러 쉬는 날을 잡아, 운동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직접 짜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봐야 머릿속으로 그린 계획과 실제 생활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것은 몸과 관계다. 현직에 있을 때는 건강관리를 뒤로 미루고, 인간관계도 회사 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병원비와 돌봄 부담이 커지고, 만날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운동과 건강관리를 미리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 직장 밖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자리도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
이 준비를 한꺼번에 끝낼 필요는 없다. 첫해에는 가계의 고정비를 정리하고, 다음 해에는 연금과 부족한 금액을 계산하며, 이후에는 새로운 일의 가능성과 생활 방식을 점검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준비 목록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해마다 실제로 달라진 결과를 남기는 것이다.
기업도 정년만 늘릴 것이 아니라, 업종과 직무의 특성에 맞게 근로시간과 업무 강도를 조정하고, 중장년이 퇴직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정년 연장의 가치는 근무 기간이 몇 년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기간에 부채가 줄었는지, 지출 구조가 달라졌는지, 급여 밖의 수입 가능성을 확인했는지, 직장 없는 생활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년이 몇 세로 확정되든, 그 시간이 단순한 연장으로 끝날지 퇴직 이후를 바꾸는 기간이 될지는 그 안에서 무엇을 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