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 영업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모바일뱅킹과 인터넷뱅킹이 일상화되면서 단순 금융거래는 비대면 채널로 이동했고, 은행들도 점포 통폐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과 자산관리(WM) 기능은 강화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전국 영업점 수는 2020년 말 4425개에서 2025년 말 3752개로 15.2% 감소했다. 5년 동안 673개 점포가 문을 닫은 셈이다. 매년 130개가 넘는 영업점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 영업점 떠나는 고객
실제 고객들의 이용 행태도 변하고 있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위기의 은행 영업점, 대중은 떠났고 이제 부자와 CEO도 떠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동안 은행 영업점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비율은 일반 고객이 53.3%에 달했다.
상대적으로 영업점 선호가 높았던 시니어는 49.4%, 부자는 41.0%, CEO는 29.0%가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영업점 이용 의향 조사에서도 모든 고객군에서 감소 의향이 증가 의향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영업점이 예금·대출·송금 등 기본 금융거래를 처리하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채널이 이를 대부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점의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왔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조사 결과 부자와 CEO는 공통적으로 전담 PB 상주와 전문 자산관리 컨설팅 강화를 원했다. 특히 부자는 프라이버시와 편의성을, CEO는 신속한 업무 처리와 절차 간소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금융거래는 모바일로 해결하지만 자산관리와 상속·증여, 기업승계 등 복합 금융서비스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면 상담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 커지는 자산가 시장
국내 자산가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자산관리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국내 부자는 지난해 47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 13만명 수준과 비교하면 15년 만에 약 3.7배 증가한 규모이며,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총 3066조원에 달한다.
부의 형성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부동산 투자와 상속·증여가 부의 주요 원천이었다면 최근에는 사업소득과 근로소득, 금융투자 수익으로 부의 축적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원은 ‘2026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서 최근 10년 이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형성한 50대 이하 자산가를 ‘K-에밀리(K-EMILLI)’로 정의했다. 이들은 부동산보다 금융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는 경향이 강했으며, ETF와 대체투자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특징을 보였다.
상속과 증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원 조사에서 부자의 68%는 재산을 많이 물려줄수록 후손의 성장 기회가 확대된다고 응답했으며, 보유 자산의 절반가량을 가족에게 이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증여와 상속을 병행하겠다는 응답은 57%에 달했다.
이처럼 자산가 시장이 확대되고 투자뿐 아니라 세무와 법률, 상속·증여, 기업승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은행권도 PB 서비스를 진화시키고 있다.
■ 은행별 PB 서비스 진화
KB국민은행의 ‘KB GOLD&WISE’는 세무·부동산·상속·증여 상담과 은퇴설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신한은행 ‘PWM’은 은행과 증권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복합 자산관리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투체어스(TWO CHAIRS)’는 금융·부동산·세무·법률 전문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종합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HANA THE NEXT)’는 상속·증여와 가업승계, 은퇴설계 등을 중심으로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디지털 금융이 일상화될수록 단순 창구 업무는 비대면 채널로 이동하겠지만, 자산관리 영역은 여전히 전문가 상담 수요가 높기 때문에 PB센터의 역할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