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보험산업이 성장 둔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아시아 보험사들은 오히려 인공지능(AI)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개별 보험사 단위로 AI 심사 시스템을 실제 사업에 투입했고, 홍콩은 보험청 주도로 대형 보험사들과 손잡고 AI 역량을 끌어올리는 제도적 지원을 갖췄다.
국내 보험사들도 인수심사(언더라이팅)와 영업 현장에 AI를 빠르게 들여오고 있지만, 이를 규율할 법과 제도는 기본 원칙만 마련됐을 뿐 세부 기준과 책임 배분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아시아, AI로 성장 돌파구 모색
딜로이트(Deloitte)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6 글로벌 보험산업 전망(2026 Global Insurance Outlook)’ 보고서는 전 세계 손해보험 보험료 성장률이 2024년 4.7%에서 2026년 2%대 초반으로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아시아·태평양은 손해보험 성장률이 2024년 2%대 후반에서 2025년 2%대 초반으로 낮아졌다가 2026년 2%대 중반으로 반등하고, 생명보험은 2024년 적자에서 2026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딜로이트는 이 지역을 AI 도입과 활용이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평가했다.
■ 일본은 사업화, 홍콩은 제도 지원
이웃 나라들의 움직임은 한층 구체적이다. 일본 타이요생명보험은 지난달 IBM과 손잡고 생성형 AI(Watsonx) 기반 보험금 지급 심사 시스템을 개발해 2027년 1월부터 순차 가동한다고 밝혔다. 연간 약 50만건의 지급 심사에 AI를 투입해 진단서의 자유서술 내용을 이해하고 문장 간 정합성을 확인하는 등 비정형 업무를 자동화한다는 구상으로, 이미 실제 사업 전환 단계에 들어섰다.
홍콩 보험청은 지난해 8월 AIA·AXA·프루덴셜 등 대형 보험사와 ‘AI 코호트 프로그램’을 발족해 AI 우수센터 설립과 인재 양성을 지원했다. 지난 3월에는 은행·증권·보험·연금 4개 감독기관이 공동으로 생성형 AI 샌드박스를 금융 전반으로 확대해, 사기 방지·고객 서비스 등에 AI를 실제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했다.
■ 도입은 앞서가는데, 기준은 안 잡혔다
국내 보험사들의 AI 도입 속도 자체는 뒤지지 않는다. 의료 문서를 AI와 광학문자인식(OCR)으로 자동 분석해 심사 정확도와 속도를 끌어올리거나,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시스템으로 건강 정보와 청구 이력을 분석해 심사 결과를 실시간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을 자동 산출하는 AI, 설계사에게 상담 전략까지 제시하는 영업지원시스템도 자리 잡는 추세다.
관건은 이를 뒷받침할 제도다. 인공지능기본법 체계는 사람의 생명·신체·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AI를 ‘고영향 AI’로 분류하고 안전성 확보 의무 등을 부과하지만, 보험 언더라이팅과 보험금 지급심사가 여기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세부 적용 기준과 업권별 책임 배분도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고영향 AI 해당 여부는 사업자가 우선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경계선상 사안에 대한 세부 해석은 아직 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업 특성과 리스크 관리 관점이 충분히 반영될지에 대해선 우려도 제기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AI 도입은 시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이지만, 현행 제도만으로는 실제 현장 적용에 한계가 있다”며 “업권 특성을 반영한 보다 세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개선책 마련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