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과 집중호우, 산불, 가축전염병, 농기계 사고, 감염병까지. 기후위기와 각종 재난이 일상이 되면서 국민의 삶과 산업 현장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는 대표적인 수단인 보험 가운데 정부가 직접 제도를 설계하고 보험료를 지원하는 ‘정책보험’이 존재한다.
정책보험은 정부가 특정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법률로 도입·운영하는 공공성 보험 제도다. 농업과 어업, 재난·재해,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부담한다.
최근 기후변화와 고령화, 산업구조 변화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증가하면서 정책보험의 역할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농어업과 재난 분야에서는 정책보험이 사실상 국가 안전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 기후위기 시대 주목받는 ‘4대 정책보험’
보험업계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양식수산물재해보험’, ‘풍수해·지진재해보험’을 대표적인 정책보험으로 꼽는다.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농작물재해보험으로, 태풍과 집중호우, 냉해, 우박, 폭염 등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2001년 도입됐다. 이후 농가 경영안정과 농업 재생산 기반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농업인의 보험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 순보험료의 약 50% 내외를 지원하며, 일부 품목은 보장수준에 따라 33~65%를 차등 보조하고 운영비의 100%를 지원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지역에 따라 순보험료의 15~40%를 지원한다.
지난해 농작물재해보험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총 76개 품목, 70만㏊ 규모에 대해 63만2000명이 가입했으며 가입률은 57.7%로 전년보다 3.3%포인트(p) 상승했다. 순보험료 규모는 1조3300억원에 달했다.
품목별 가입률은 사과가 재배면적 기준 105.8%로 가장 높았고, 이어 월동무 94.0%, 배 86.9%, 가을무 71.4%, 콩 67.8%, 벼 65.1% 순이었다. 지난해 냉해와 산불, 폭염, 집중호우 등 각종 재해가 발생하면서 총 28만1000명에게 1조3932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됐다. 호당 평균 보험금은 495만원으로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평균 농업소득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자연재해뿐 아니라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소득 감소까지 보장하는 농업수입안정보험도 확대 운영하고 있다. 농업수입안정보험은 수확량 감소와 가격 하락을 동시에 보장하는 제도로 2015년부터 시범 도입됐다.
가축재해보험 역시 축산농가를 위한 대표 정책보험이다. 화재와 태풍, 폭설, 폭염, 지진 등 자연재해는 물론 일부 질병과 사고로 인한 가축 피해를 보장하며, 정부가 보험료의 50%를 지원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추가 지원을 제공한다.
양식수산물재해보험은 태풍과 해일, 풍랑, 적조, 고수온 등으로 발생하는 양식어가 피해를 보상한다. 전복과 굴, 넙치, 참돔 등 30여 개 품목이 대상이며 양식시설 피해도 함께 보장한다.
풍수해·지진재해보험은 태풍과 홍수, 호우, 강풍, 대설, 지진 등 자연재해로 인한 주택과 온실, 상가, 공장 등의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험료의 55~100%를 지원해 가입자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 “농사도 위험 상존”… 사람을 지키는 정책보험
정책보험은 농산물이나 가축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농어업 종사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최근 농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안전사고다.
지난 5일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농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29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약 60%는 농기계 사고 때문이었다.
특히 농업인안전보험 기준 재해율은 5.0%로 전체 산업재해율 평균(0.67%)의 약 7.5배, 사망률은 2.99%로 전체 산업(0.98%)의 3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고령 농업인이 많은 산업 특성상 농기계 사고와 낙상, 근골격계 질환 등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30년까지 농업인 사망·부상자율을 2024년 대비 25%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농업인안전보험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농업인안전보험은 농작업 중 발생하는 사망과 장해, 입원, 감염병 진단 등을 보장하는 정책보험이다. 정부는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70%까지 지원한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포함한 농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농작업근로자안전보험도 운영되고 있으며, 농촌 인력난 해소와 안전망 구축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농기계종합보험 역시 대표적인 농업정책보험이다. 트랙터와 경운기, 콤바인, 드론 방제기 등 15개 종 농기계 사고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를 보장하며, 자동차보험과 유사하게 대인·대물배상, 자기신체사고, 법률비용 지원 등을 제공한다. 정부는 보험료의 50%, 영세농은 70%까지 지원한다.
농업인안전보험과 농작업근로자안전보험, 농기계종합보험을 포함한 올해 사업 예산은 약 1900억원 규모에 달한다.
■ 어업인과 어선도 국가가 보호
수산 분야에서도 농업 못지않게 다양한 정책보험이 운영되며 실질적인 어업 경영 안정을 돕고 있다.
어업은 태풍과 풍랑, 해상 추락, 선박 충돌 등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대표적인 고위험 산업이다. 바다 위에서 이뤄지는 작업 특성상 사고 발생 시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영세 어업인도 적지 않아 별도의 안전망 구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에 따르면 최근 2년(2024~2025년)간 전체 해양사고 선박 중 어선 비중은 65.3%에 달했다. 사망·실종자 수도 228명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어선 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운영되는 대표적인 인적 안전망이 ‘어선원재해보상보험’이다. 어업활동 중 발생한 부상과 질병, 장해, 사망 등을 보상하는 의무보험으로, 연근해 어선의 경우 반드시 가입해야 하며 정부가 보험료 일부를 지원한다.
특히 법령 개정을 통해 당연가입(의무) 대상이 3톤 미만의 소형 영세 어선까지 전면 확대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조업 어선원들에 대한 보호가 대폭 강화됐다.
어선 사고는 인명피해뿐 아니라 선박 손상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크다. 이에 선박 자체의 파손, 충돌, 화재 등으로 인한 물적 피해를 보상하는 ‘어선재해보상보험’도 함께 운영 중이다.
어업인 개인을 위한 안전망도 마련돼 있다. ‘어업인안전보험’은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어업인을 위한 정책보험으로, 어업 작업 중 발생하는 부상과 질병, 사망 등을 보장한다. 보험료의 50%를 국가가 지원하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은 70%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기후보험과 시민안전보험까지 확대
최근에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공공보험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경기도의 ‘기후보험’이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기후보험을 시행하고 있으며, 별도 가입 절차 없이 주민등록상 경기도민이면 자동 가입되고 등록외국인과 외국국적동포도 포함된다.
폭염과 한파에 따른 온열질환·한랭질환 진단비를 지원하고 감염병 10종에 대한 진단비도 보장하며, 올해부터는 응급실 내원비와 사망위로금까지 신설됐다. 약 1400만명이 혜택을 받는 전국 최대 규모 공공형 기후보험으로 평가된다.
시민안전보험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민안전보험은 지방자치단체가 보험료를 부담하고 주민은 별도 가입 없이 자동으로 보장받는 제도로, 자연재해 사망과 화재·폭발·붕괴 사고, 대중교통 사고, 스쿨존 교통사고, 사회재난 사망 등이 주요 보장 대상이다.
민영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중복 보상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 재난 발생 시 생활안정 지원 장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사후 복구 넘어 국가 리스크 관리 체계로”
관계 부처는 정책보험이 단순한 보상제도를 넘어 국가 리스크관리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복구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재난 발생 빈도와 규모가 커지면서 사후 복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보험을 활용해 위험을 사전에 분산하고 피해 발생 시 신속하게 보상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이 자연재해 위험을 관리하고, 농업수입안정보험이 시장 위험을 보완하며, 풍수해보험과 기후보험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구조다. 시민안전보험 역시 지방정부 차원의 생활밀착형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정책보험은 농민과 어민, 소상공인, 일반 시민까지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위험관리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후변화와 초고령화, 감염병 확산 등 새로운 위험이 늘어나는 가운데 정책보험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