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문안 정담 인생 2막 최고의 축복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손주와 놀면 젊어지는 다섯가지 이유'라는 글을 읽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장(24대)을 지낸 뒤 지금도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을 맡아 왕성하게 현장을 누비고 있는 윤은기 박사의 에세이로, 한줄 한줄 깊이 공감돼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나도 2년 전 결혼한 아들 내외가 연초 딸을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손녀는 기어다니다 어느새 일어서는 법까지 터득했다. 아기가 제법 몸을 가누게 되면서부터 아들 내외는 한달에 두번 꼴로 집에 들르곤 한다.
아들 내외가 손녀를 데리고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일상은 온통 손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행여 감기라도 걸리면 손녀에게 옮기게 될까봐 꼭 필요하지 않은 외출을 삼가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버스나 열차를 탈 경우 반드시 마스크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손씻기와 양치질 횟수가 늘어나고, 옷을 자주 갈아입는 바람에 비누와 치약이 평소보다 빨리 떨어지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도 잦아졌다.
손녀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여기에 앙증맞은 몸짓과 발성으로 할아버지·할머니와 교감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흐뭇하고 엔돌핀이 치솟는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미소를 짓게 하고 웃음을 만들며 얼굴을 환한 빛으로 바꿔 놓는다.
예전에는 모임 때 일찍 할아버지가 된 동기의 끊이지 않는 손주 얘기에 얼른 공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나도 똑같아진 것 같다. 그냥 손녀를 새해 선물로 안겨준 아들 내외가 장하고 자랑스럽고, 손녀는 그보다도 더 자랑스럽고 자랑하고 싶으니 인생 2막의 최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인이 되자 바로 독립한 아들은 여간해선 집에 들르지 않았는데 요즘은 오지 말라고 해도 굳이 가겠다고 고집한다.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느라 며칠 전부터 서둘러 준비하다보면 쓸데없이 바빠지고 여유시간이 줄어들게 돼 약간의 짜증도 생기지만, 손녀는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두배쯤 넘치는 기쁨을 안기는 마술을 부린다.
손녀와 어울리다보면 확실히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윤 박사는 '손주와 놀면 젊어지는 다섯가지 이유'로 ▲심리적으로는 위안을 ▲생물학적으로는 활력을 ▲철학적으로는 순환의 의미를 ▲행동과학적으로는 신체 자극을 ▲문화적으로는 세대간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점을 꼽았다. 100% 동감한다. 동기 모임 때 얼굴 표정을 보면 손주가 있는 친구가 훨씬 밝고 웃음도 많다. 세상을 보다 너그럽고 긍정적으로 보게 됐기 때문일 터.
손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내 삶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여유로워지고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어디선가 의사 가운데 소아과 의사가 가장 건강하고 수명도 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역시 아기와 어린이를 많이 만나게 돼 삶의 연속성을 거듭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윤 박사도 설파했듯이 세대간 삶의 연속성 확인은 무척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재의 내 삶과 미래 세대의 삶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불현듯 여기서 저출생 문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식은 생명체의 본능이다.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다만 지능이 높은 인간은 삶의 연속성 확인 정도에 따라 개체 수를 줄이고 늘린다. 출생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도 자신의 자녀 시대와 손주가 살아가는 시대의 삶의 질이 그래도 괜찮겠다 싶으면 아이를 낳아 키울 것이 틀림없다.
기성 세대가 해야 할 일은 손주가 살아가게 될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나쁘게 만들지는 않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말과 행동, 생활양식 하나 하나가 내 인생 뿐만 아니라 자녀와 손주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드는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