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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나라의 빚과 재정에 대한 황금률을 찾아서 ② — 영국은 왜 지키지 못했나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나라의 빚과 재정에 대한 황금률을 찾아서 ② — 영국은 왜 지키지 못했나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나라의 빚과 재정에 대한 황금률을 찾아서 ② — 영국은 왜 지키지 못했나

좋은 원칙도 측정기준이 흔들리면 작동하지 못한다. 영국의 두 재정준칙은 투자에만 빚을 내고, 전체 빚은 경제가 감당할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을 분모와 분자에 넣고 어느 기간을 계산할지, 지켰는지를 누가 판정할지는 정부가 정했다.

비율에서 먼저 고정해야 하는 것은 분모다. 무엇에 견주어 재는지가 정해져야 분자의 움직임이 뜻을 갖기 때문이다. 영국이 택한 분모는 나라의 경제 규모, 곧 국내총생산(GDP)이었다.

그 위에 놓인 첫 번째 황금률의 분자는 경상수입에서 경상지출을 뺀 금액이다. 그해의 세금으로 급여·복지급여·이자 같은 일상적인 지출을 감당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철도나 병원을 짓는 순투자는 경상지출에서 제외했다. 황금률이 재려 한 것은 적자의 크기보다 ‘오늘의 살림을 오늘의 수입으로 감당하는가’였다.

목표는 이 비율을 경기순환 전체에서 평균 0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불황의 적자를 호황의 흑자로 메우도록 한 합리적인 설계였다. 그런데 여기서 분모는 한 겹이 아니었다. 무엇으로 나눌지에 더해 어느 기간을 합산할지가 함께 정해져야 했다. 재는 바닥이 먼저 고정되지 않으면 분자가 아무리 정확해도 결과는 달라진다.

2005년 봄까지 영국 재무부가 잡은 경기순환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일곱 해였다. 그런데 그해 시작점이 1997년으로 앞당겨지고 끝은 2009년으로 늦춰졌다. 측정기간이 열두 해로 늘어난 것이다. 분자는 손대지 않고 분모의 기간만 늘린 셈이었다. 시작을 앞당기자 1990년대 말의 경상수지 흑자가 들어왔고, 끝을 늦추자 적자를 메울 시간도 생겼다. 경제의 과거는 그대로였지만 자의 눈금을 옮기자 준수와 위반의 경계도 움직였다.

영국 정부는 그 기간의 평균 경상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의 약 0.1% 흑자로 전망했다. 목표를 지킨다는 판정이었다. 그러나 여유는 약 80억 파운드였고, 당시 차입 전망의 1년 평균 오차는 약 110억 파운드였다. 측정오차보다 작은 여유였다. 다른 기관은 같은 기간에 0.02~0.04% 적자가 나올 것으로 계산했다.

목표를 지켰는지만이 아니라 목표와 실제의 차이가 측정오차보다 충분히 큰지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결과가 목표선 바로 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분자의 분류였다. 낡은 다리를 보수해 수명을 삼십 년 늘리는 비용은 투자일까, 그해의 유지비일까. 경상지출이면 분자를 낮추지만 투자로 인정되면 경상지출에서 제외된다. 같은 돈도 분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규칙을 지켜야 할 정부가 분류기준까지 정하면 사업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 이름만 바꾸어도 황금률을 지킨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세 번째 문제는 부채의 범위였다. 두 번째 준칙도 분모는 국내총생산이었고 분자는 공공부문 순부채였다. 그 비율을 40% 이내로 유지하도록 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병원을 지으면 건설비가 분자에 잡히지만, 민간이 먼저 짓고 정부가 수십 년 사용료를 내면 당장의 국채는 줄어든다. 영국의 민간투자사업(PFI)이 그런 방식이었다.

민간의 자금과 운영능력으로 시설을 빨리 공급한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지급방법만 달라졌을 뿐 미래 부담은 남았다. 장기 지급의무가 분자에서 빠지면 공식 부채비율은 실제 부담보다 낮게 나타날 수 있었다.

2008년 예산에서 정부가 전망한 2010~2011년 부채비율은 39.8%였다. 40%라는 목표를 지키기는 했지만 여유는 0.2%포인트(p)뿐이었다. 금융위기가 닥치자 부채비율은 결국 40%를 넘어섰다.

비율은 분모인 국내총생산이 커져도 좋아지고 분자가 줄어도 좋아진다. 그래서 분모가 흔들리면 분자의 개선을 읽어낼 수 없다. 불황으로 국내총생산이 줄면 빚이 그대로여도 부채비율은 오르고, 투자를 미루면 재정수치는 좋아져도 낡은 철도는 남는다. 분모를 먼저 못 박고, 그다음에 분자가 무엇을 치르고 움직였는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하나의 비율은 준수와 위반을 말해줄 수 있지만 재정이 실제로 나아졌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두 준칙을 잠시 중단한 결정은 타당했다. 금융체계가 무너지는데 부채비율을 지키겠다며 손을 놓는 정부가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위기의 시작과 종료를 판정하고 언제 원래 목표로 돌아올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영국은 2010년 독립기구인 예산책임청(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OBR)을 세워 경제·재정 전망과 준칙 달성 가능성의 평가를 정부 밖에 맡겼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이 자신의 답안까지 채점하던 구조를 바꾼 것이다.

영국의 실패는 황금률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투자에만 빚을 내고 전체 빚을 감당할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타당했다. 문제는 비율 하나를 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먼저 무엇에 견주어 어느 기간을 잴지를 못 박고, 그다음 분자에 무엇을 넣고 뺄지, 목표와 실제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숫자의 변화가 분모와 분자 중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아야 한다.

측정의 바닥이 흔들리고 평가자가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원칙도 정부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숫자 하나를 정하면 문제가 풀릴까. 유럽은 정부 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안에 묶었다. 그러나 왜 하필 3%였을까. 그 숫자 역시 경제학이 계산해 찾아낸 정답은 아니었다.

송영흡

케이알파트너스 대표이사

blog.naver.com/adamsmith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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