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보험은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보험에 가입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입니다.”
투자의 대가이자 오랜 기간 보험사를 이끌어 온 워런 버핏은 보험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손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보험료가 위험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한 경우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실에서는 불필요한 보험에는 가입하면서 정작 필요한 보험에는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험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보험을 선택하는 소비자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경제학에서는 보험을 대표적인 신뢰재(Credence goods)로 본다. 신뢰재는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기 전은 물론, 구매한 뒤에도 자신에게 적절한 선택이었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의료서비스나 자동차 정비가 대표적인 예이며, 보험도 마찬가지다. 일반 소비재처럼 성능과 가격만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위험을 다루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어떤 위험을 우선 대비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보장이 필요한지, 어떤 상품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보험에 가입한 뒤에도 자신의 보장이 적절한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몇 시간 목이 터져라 보험 이론을 강의해도, 늘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은 같다.
“그래서 교수님은 어떤 보험에 가입하셨어요? 저는 뭘 가입해야 하나요?”
상품과 이론을 다 배워도 보험은 여전히 어렵다.
이런 보험, 소비자들은 과연 잘 선택하고 있을까. 경제학자들의 연구도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보험 구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선택 패턴은 작은 손실에는 과도하게 대비하면서도, 정작 삶을 흔들 수 있는 큰 위험에는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전자제품 연장보증이나 소액 보장은 쉽게 선택하면서도, 가계의 재정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에는 충분히 대비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위험을 객관적으로 계산하기보다 직관에 의존해 판단하거나, 필요한 보장을 스스로 따져보기보다 권유받은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눈앞의 작은 위험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복잡하고 장기적인 위험일수록 판단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위험의 형태가 단순한 보험은 상대적으로 선택하기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소득, 가족 구성, 부양책임에 따라 적정 보장 수준이 천차만별인 생명보험이나 보장성 보험은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자신에게 정확히 얼마만큼의 보장이 필요한지 스스로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수행한 연구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다. 위험은 달랐지만, 보장은 비슷했다. 가족구성과 소득, 부양가족 수에 따라 필요한 사망보장 규모는 크게 달랐지만, 실제 가입한 사망보험금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수준에 집중돼 있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보장이 필요한 가구일수록 적정한 보장과 실제 보장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문제는 보험 가입 여부가 아니었다. 필요한 보장과 실제 가입한 보장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소비자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소비자가 최적의 선택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보험산업에 그만큼 더 큰 책임이 요구된다. 소비자의 행동과 심리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험사가 단순히 그 반응에만 맞춰 잘 팔리는 상품만 만들어 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보장을 설계하고, 소비자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위험을 함께 찾아내며, 그 위험에 맞는 보장을 제안하는 것이 보험사의 진짜 역할이 되어야 한다. 상품을 설계할 때도, 판매할 때도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이 정말 필요한가’다.
잘 팔리는 보험을 만드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필요한 보험을 만드는 것은 보험산업의 존재 이유다. 보험은 소비자의 불안을 상품으로 바꾸는 산업이 아니라, 위험을 안심으로 바꾸는 산업이어야 한다. 그것이 보험산업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끝까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아닐까.
박소정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