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달 보험료를 냈으니 사고가 나도 보험사가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자가용을 운전하는 대다수 직장인과 운전자가 당연하게 품고 있는 믿음이다. 매월 2만~3만원씩 10년 넘게 운전자보험을 유지해 왔다면 든든한 방패막이를 갖고 있다고 자부하기 쉽다. 그러나 가입 시기와 특약 구성에 따라 보장 공백이 있을 수 있다.
퇴근길 횡단보도나 골목길에서 신호위반이나 보행자 보호의무위반 등 12대 중과실 사고로 보행자를 다치게 해 전치 4주 진단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2020년 이전의 구형 운전자보험을 가입하고 있다면, 피해자 형사합의금 등 예상치 못한 비용을 직접 부담해야 할 수 있다.
운전자보험의 핵심 담보인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명확하다. 과거 구형 운전자보험은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전치 6주 이상’의 중상을 입었을 때만 합의금을 보장하도록 약관이 설계되어 있었다. 6주 미만의 경상 사고는 종합보험(대인배상) 처리로 형사 처벌을 면하거나 약식기소(벌금형)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식이법(스쿨존 사고 가중처벌) 시행 이후 사법 환경은 달라졌다. 어린이보호구역이나 횡단보도 등에서 중대법규를 위반해 사고를 낼 경우, 피해자가 전치 2~3주의 가벼운 부상을 입었더라도 정식 형사절차가 진행될 수 있는 위험이 급격히 커졌다. 피해자와의 형사 합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구형 보험에는 6주 미만 교통사고처리지원금 특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구형 운전자보험은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할 때 법원에 맡기는 형사공탁금제도에서도 자금 공백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모르면 공탁 자체가 불가능했으나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사건번호만 알면 법원에 돈을 맡길 수 있는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 중이다.
문제는 법원에 공탁을 걸려면 당장 현금이 필요한데 과거 운전자보험은 피해자가 공탁금을 실제로 수령한 영수증을 제출해야만 사후에 보험금을 환급해 주는 후청구 구조였다. 피해자가 법원 공탁금 수령을 거부한 채 항소하거나 버티면 수천만원의 목돈을 개인이 사채나 대출로 끌어와 법원에 묶어두어야만 했다.
반면 최신 운전자보험에는 ‘공탁금 50% 선지급 제도’가 도입돼 있다. 피해자가 돈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법원에 공탁서를 접수한 증명 서류만 제출하면 합의금 한도의 절반을 보험사가 먼저 내준다. 목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합의 시기를 놓쳐 법정 구속되는 상황을 막아주는 핵심 안전장치다. 여기에 과거 경찰 조사 후 검찰 기소 시점부터 작동하던 변호사 선임비용 역시 최신 상품은 경찰 조사 초기 단계부터 선지급받을 수 있도록 대폭 보강됐다.
그렇다면 운전자들은 지금 당장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첫째, 보험 증권에서 교통사고처리지원금 항목을 살펴봐야 한다. 보장 조건에 ‘피해자 6주 이상’만 적혀 있고 ‘중대법규위반 6주 미만(사고당 최대 500만~1300만원 보장)’ 특약이 빠져 있다면 그 보험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둘째, 변호사 선임비용과 형사합의금의 ‘선지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먼저 수천만원의 목돈을 결제한 뒤 사후 청구해야 하는 구형 방식이라면 불의의 사고 시 유동성 위기로 가계 금융이 마비될 수 있다.
운전자보험은 20년, 30년 장기로 묻어두는 저축 상품이 아니다. 도로교통법과 사법 판결 추세에 맞춰 가장 민감하게 옷을 갈아입혀야 하는 소모성 비용이다. 월 1만~2만원의 비용 절감을 핑계로 10년 전 가입한 구형 보험을 방치하는 것은 구멍 난 에어백을 믿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것과 다름없다.
오동근
칼럼니스트 | 손해사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