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흡의 종횡무진 세계사 나라의 빚과 재정에 대한 황금률을 찾아서 ① — 빚에도 두 종류가 있다
집을 사려고 받은 대출과 생활비가 모자라 쓴 카드대금은 둘 다 빚이지만 성격은 다르다. 앞의 빚 뒤에는 집이 남고, 뒤의 빚 뒤에는 갚을 것만 남는다. 그렇다면 나라가 진 빚도 이처럼 나눌 수 있을까. 오늘의 운영비를 충당한 빚과 오십 년 동안 사용할 철도를 만든 빚을 같은 숫자로 보아도 되는가.
이 오래된 질문에 붙은 이름이 재정의 ‘황금률(Golden Rule)’이다.
황금률은 원래 경제학에서 시작된 말이 아니다. 서양에는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고, 동양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논어(論語)’의 가르침이 있다. 무엇과도 바꾸어서는 안 될 원칙에 붙이던 이름이었다. 뒤에 다른 분야도 이 말을 가져다 썼다.
성장이론은 오늘의 소비와 내일의 소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자본의 수준을 황금률이라 불렀고, 금융에는 삼십 년 쓸 공장에 석 달마다 갚아야 하는 돈을 붙이지 않는다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맞추라는 오래된 원칙이 같은 자리에 놓인다. 분야는 달라도 물음은 하나였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몫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나라 살림에서 황금률은 공무원 급여·복지급여·행정 운영비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비용은 그해의 수입으로 감당하되, 철도·학교·병원처럼 여러 세대가 사용할 자산을 만드는 투자에는 빚을 낼 수 있다는 원칙이다. 정부가 빌린 돈으로 오십 년 쓸 철도를 놓았다면 지금 태어난 아이도 그 철도를 탄다. 건설비 전액을 오늘의 국민에게만 걷는 것이 반드시 공평하지는 않다. 반대로 올해의 운영비를 빚으로 메우면 혜택은 현재 세대가 누리고 상환은 다음 세대가 진다.
혜택을 누리는 세대와 비용을 부담하는 세대를 되도록 일치시키자는 원칙이 바로 ‘세대 간 형평성’이다. 보험이 보장기간과 위험의 크기를 따져 보험료를 산정하듯, 국가도 빚을 낼 때 그 혜택이 얼마나 오래 이어지는지, 상환 부담은 어느 세대까지 미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 원칙을 현대적인 재정준칙으로 선명하게 체계화한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었다.
1997년 7월 2일 런던 하원에서는 열여덟 해 만에 정권을 되찾은 노동당의 첫 예산연설이 있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차가웠다. 노동당이 집권하면 복지지출이 늘고 세금과 나라의 빚도 함께 커질 것이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은 그 의심 앞에 두 줄의 규칙을 내놓았다.
첫째는 재정의 황금률이었다. “경기순환 전체에 걸쳐 정부는 투자하기 위해서만 차입하고, 경상지출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차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둘째는 지속가능한 투자규칙(Sustainable Investment Rule)이었다. 공공부문 순부채를 안정적이고 신중한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이듬해 재정법에 근거해 재정안정규약(Code for Fiscal Stability)을 마련했고, 두 줄은 그 아래에서 재정운용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다만 그 ‘신중한 수준’이 얼마인지는 규약에 적혀 있지 않았다. 국내총생산(GDP)의 40%라는 선은 재무부가 운용상 그은 것이다. 규칙은 문장으로 정해졌고 숫자는 그 뒤에 따라붙었다. 재정준칙의 숫자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물음은 이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황금률을 단순한 긴축 규칙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차입을 무조건 막는 규칙이 아니라,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혀 적자가 커질 때 가장 먼저 희생되기 쉬운 공공투자를 지키기 위해 그은 경계선이었다. 오늘 주던 돈을 줄이면 곧바로 항의가 나오지만, 십 년 뒤 필요한 시설을 짓지 않았다고 오늘 항의할 사람은 드물다. 그해 적자 숫자는 줄어들지만 도로와 학교는 낡아간다.
그렇다고 투자라는 이름만 붙이면 얼마든지 빌려도 되는가. 정부가 모든 지출을 투자라고 부르면 빚은 끝없이 늘어날 수 있다. 둘째 줄은 그 이름 붙이기에 천장을 씌우는 장치였다. 가계로 말하면 첫째 규칙은 “무엇을 사기 위해 빌렸는가”를 묻고, 둘째 규칙은 “그래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빌렸는가”를 묻는 셈이다. 빚의 용도와 크기는 한 쌍이었다.
그러나 회계 항목이 판단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아무도 타지 않는 도로는 자산으로 남아도 좋은 투자가 아니며, 교사와 연구인력을 기르는 돈은 그해의 비용으로 잡혀도 이십 년 뒤 나라의 생산능력을 키운다. 좋은 빚과 나쁜 빚의 구분은 판단의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끝내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 빚으로 무엇을 남겼는가. 그리고 그 빚을 갚을 사람도 그것이 남긴 혜택을 누리는가.
황금률이 지키려던 것은 미래였다. 그러나 무엇을 투자라 부를지, 경기순환이 언제 시작하고 끝나는지를 정하는 사람은 현재의 정부였다. 규칙에 매여야 할 쪽이 그 규칙의 준수 여부까지 판정한 것이다. 좋은 원칙을 세우는 일과 끝까지 지키는 일은 달랐다. 영국의 황금률은 바로 그 틈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연재는 네 차례에 걸쳐 그 과정을 따라간다. 첫 편에서는 영국이 빚의 용도를 가르려 한 이유를, 두 번째 편에서는 황금률이 무너진 과정을 살펴본다. 세 번째 편에서는 유럽 재정준칙의 기준이 어디서 나왔는지 추적하고, 마지막 편에서는 한국 재정에 맞는 규칙의 조건을 묻는다.
네 편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다음 세대에 빚을 넘기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함께 남겨야 하는가.
송영흡
케이알파트너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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