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의 마음 장사 이야기 무지개는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
소나기가 지나가고 무거운 회색 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심스레 발을 내디디던 그때, 아직 공기 중에 남아 있던 빗방울 너머로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무심하게 서 있던 나는 그 무지개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꼈지요. 그리고 문득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무지개는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
과학은 무지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태양빛이 대기 중 물방울을 통과하며 굴절과 반사를 거쳐 파장에 따라 흩어지는 현상” 즉 무지개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빛이 특정한 조건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빗방울이라는 매개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인간의 가능성도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무수한 색깔이 잠들어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맑은 하늘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삶이라는 빗방울을 통과할 때, 우리 안의 빛은 비로소 자신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입니다.
우리는 흔히 비를 원망합니다. 계획을 망치고, 마음까지 축축하게 만드는 존재. 그러나 무지개의 시선에서 보면 빗방울은 없어서는 안 될 프리즘입니다.
살면서 만난 여러 가지 시련을 떠올려 봅니다. 실패한 시험, 어긋난 관계, 승진탈락, 사업실패 등 그 순간에는 모두 지긋지긋한 빗줄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빗방울들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색깔로 나 자신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빛이 직진하기만 한다면 무지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무지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빛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굴절하고 반사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고,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자신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모든 성공은 크고 작은 굴절의 총합입니다.
지금 내 삶이 예정된 궤도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 안의 빛이 무지개가 되기 위해 굴절을 시작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거울의 본질은 다시 비추는 것입니다. 무지개가 거울처럼 은유로 비춰지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응축해 되돌려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무지개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을까요. 며칠간 내린 비의 축적, 다시 나타난 햇빛, 그 둘이 만나는 각도, 이 모든 조건이 일치할 때에만 무지개는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룬 어떤 성취도 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과 시간의 축적입니다.
무지개는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그 유한함이 오히려 무지개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노력의 결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애써 도달한 정상의 순간은 대개 짧습니다. 그러나 무지개가 사라져도 하늘이 사라지지 않듯, 성취의 순간이 지나가도 그 여정에서 빚어진 나 자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지개가 남긴 것은 하늘 위 흔적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사람의 마음속 이미지입니다. 노력이 남긴 것 역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새겨진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무지개가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빛은 어디선가 굴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노력이 조용히 스펙트럼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지개는 인간의 노력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은 비를 피한 사람보다, 비를 맞는 바보처럼 자신의 빗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의 얼굴을 가장 환하게 비춥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볼 때마다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은 하늘의 색이 아니라, 비를 견디어 낸 빛이라는 것을…
김태우
한화생명 63WM센터장 |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보험신문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