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건의 개요 - 대구지방법원 2025나302860 판결
본 사고는 2023년 6월 4일 15시 31분경 경북 구미시 옥성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내서기점 131㎞ 지점 상행선 상주터널을 김천분기점 방면에서 낙동분기점 방면으로 주행하던 중 발생했다.
편도 2차로 중 1차로를 따라 순차 진행하던 원고 피보험차량(테슬라)이 앞선 차량들의 정차로 급제동하여 정차하자, 뒤따르던 피고차량(쏘렌토)이 이를 추돌했다. 그 직후 피고차량의 뒤에서 주행하던 K7 승용차량이 다시 피고차량을 추돌했고, 이 충격으로 피고차량이 앞으로 밀리면서 이미 정차해 있던 원고 피보험차량을 재차 추돌하는 3중 연쇄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쟁점은 ▲연쇄추돌 상황에서 원고 피보험차량과 피고차량 사이의 과실비율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원고 피보험차량의 급제동이 안전거리 미확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선행차량들의 정차라는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는지에 있었다.
■ 법원의 판단 - 원고차량 20% 과실, 피고차량 80% 책임
법원은 원고 피보험차량 20%, 피고차량 80%의 과실로 판단했다.
법원은 우선 이 사건 교통사고가 전방주시의무 및 안전거리확보의무를 게을리한 피고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보아, 피고에게 원고가 지급한 보험금을 구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원고 피보험차량에도 일부 과실이 있다고 봤다. 원고 피보험차량 역시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고 선행차량과의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해 급제동을 피하는 등 안전하게 운전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채 급제동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과실을 20%로 산정했다.
■ 판결이유에 대한 의문점
이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20%라는 과실비율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결론에 이르게 된 판단경로가 판결이유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이 원고차량의 과실 근거로 제시한 것은 단순한 급제동이 아니다. 판결은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여 급제동을 피하는 등 안전하게 운전하여야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문언상 도로교통법 제19조 제1항의 안전거리 확보의무 위반을 전제로 한 판단처럼 읽힌다.
그런데 인정사실을 보면 사실관계는 단지 “선행하던 원고 피보험차량이 앞선 차량들의 정차로 인하여 급제동하여 정차하였다”고만 적시되어 있을 뿐이다.
즉 선행차량이 어떻게 정차했는지, 원고차량이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는지, 급제동이 정상적인 회피행위였는지 등의 핵심 사실은 판결문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은 두 개의 전혀 다른 판단경로로 나뉜다.
판단경로 ① 안전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의 부득이한 급정거
원고차량이 통상 요구되는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정상적으로 주행하고 있었는데, 선행차량들이 예견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갑자기 정차하여 추돌을 피하기 위해 급제동할 수밖에 없었다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안전거리 확보의무 위반은 성립하지 않는다. 급제동은 도로교통법 제19조 제4항이 예정한 ‘위험방지를 위한 부득이한 경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원고차량의 급제동은 위법행위가 아니라 적법한 긴급회피행위가 되고, 원고차량의 과실은 사실상 인정되기 어렵다. 이러한 경로라면 후행 추돌사고의 일반원칙에 따라 피고 측 책임이 대부분 인정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판단경로 ② 안전거리 미확보가 급정거를 초래한 경우
반대로 원고차량이 애초부터 선행차량과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채 주행했고, 선행차량의 정차가 통상적인 감속·정지였음에도 근접거리 때문에 급제동할 수밖에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먼저 도로교통법 제19조 제1항의 안전거리 확보의무 위반이 성립한다. 급제동은 그 위반의 결과에 불과하므로 제19조 제4항의 ‘부득이한 경우’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 경로라면 원고차량 역시 사고 발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상당한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20%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다. 20%라는 결론에 이르는 판단경로가 판결이유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경로가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블랙박스 영상에 나타난 선행차량과의 실제 이격거리, 제동 개시 시점, 반응시간 등을 분석해야 비로소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판결문은 그 연결고리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과실비율만 제시하고 있다.
■ 판결의 의의와 시사점
이번 판결은 연쇄추돌 사고에서 선행차량의 급제동이 문제 되는 경우 과실비율 자체보다 과실비율에 이르는 판단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게 제시되어야 하는가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무에서는 흔히 ‘급제동’이라는 결과만 보고 선행차량에도 일정 부분 과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안전거리 확보의무 위반인지, 아니면 위험방지를 위한 부득이한 급제동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두 경우는 동일한 급제동이라는 외형을 가지지만 법률효과는 전혀 다르다.
실무적으로도 블랙박스 영상이 존재하는 사건이라면 ① 선행차량의 감속 및 정차 형태, ② 차량 간 실제 이격거리, ③ 제동 개시 시점과 반응시간, ④ 도로교통법 제19조 제4항의 '부득이한 경우'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심리하고 이를 판결이유에 설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