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무한한 낙관론이 공기 중에 넘실거린다. 평범한 직장인부터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빚을 내어 자산시장으로 몰려드는 풍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기시감은 한 세기 전인 1929년 10월, 대폭락 직전 월스트리트를 지배했던 장면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 당시 사람들은 인류의 소통 방식을 송두리째 바꾼 라디오와 자동차 등 다양한 신기술에 열광하며 "이번에는 다르다"는 맹신 속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나 100년 전 이러한 기술들이 약속했던 풍요는 결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혹독한 파산의 기록으로 남고 말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출간된 앤드루 로스 소킨의 '1929'는 암호화폐와 인공지능(AI) 광풍에 휩싸인 현대 금융시장에 정교한 질문을 던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막전막후를 치밀하게 파헤친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저자이면서, '뉴욕 타임스' 간판 저널리스트 겸 CNBC 앵커인 소킨은 특정한 지침 대신 방대한 팩트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장의 흐름을 냉정하게 추적해 온 인물이다. 그는 8년간의 집요한 취재를 거쳐 거대한 시장 붕괴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과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100년 전 월가의 생생한 분위기와 함께 복원해 냈다.
책은 대공황의 원인을 단순한 지표 하락이 아닌, 고삐 풀린 낙관주의와 극단적인 레버리지 투자에서 찾는다. 당시 사람들은 100달러짜리 주식을 살 때 단 10달러의 증거금만 내고 나머지는 빚을 내는 신용 거래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내셔널 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회장을 비롯해 JP모건의 잭 모건, 투자자 제시 리버모어, 훗날 대통령의 아버지가 되는 조셉 케네디 등 당대의 거물들은 이러한 대중의 투기 심리를 부추기거나 시스템의 경고음을 방치했다.
저자는 주가 표시기의 숫자에 일희일비하던 당시 월가의 흥분과 불안을 밀착 취재하듯 조명하며, 집단적 망상이 어떻게 합리적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렸는지 날카롭게 파헤친다.
또한 저자는 거품의 형성부터 붕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정·재계 핵심 권력층이 보인 '눈감아주기'와 안일한 '정책적 실책'들을 세밀하게 짚어낸다. 실물 경제의 펀더멘털과 완전히 동떨어진 자산 가격 상승을 자본주의의 정당한 승리로 착각했던 당대의 분위기가 결국 어떤 비극적 대가를 치렀는지 충실한 자료를 기반으로 펼쳐 보인다. 이는 단순한 옛이야기를 넘어, 제도가 고도화된 오늘날에도 투기 심리와 리스크 방치가 결합할 경우 언제든 대형 금융 참사가 되풀이될 수 있음을 고발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수많은 제도적 방어벽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탐욕과 공포가 만들어내는 거품의 매커니즘은 변하지 않는다. 100년 전 새로운 기술이 불러왔던 환상이 파국의 기록으로 끝났듯, 오늘날 AI와 첨단 기술이 약속하는 유토피아 역시 리스크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잔인한 '역사의 반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시장의 과열에 눈이 멀어 위험 신호를 외면하는 순간 자산의 가치는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적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시장이 선사하는 거대한 착시 현상 속에서 스스로 파국을 초래하는 우를 또다시 범할 수밖에 없다.
1929 /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