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계약 재매입, 고금리ㆍ실손 해법 될까

보험계약 재매입, 고금리ㆍ실손 해법 될까
과거 고금리를 앞세워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저축성 보험이 이제 보험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여기에 만성 적자의 주범으로 꼽히는 1·2세대 실손의료보험까지 더해지며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보험사가 웃돈(프리미엄)을 주고 고객의 계약을 되사들여 해지하는 ‘보험계약 재매입(Insurance Buy-back)’ 제도가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과 업계가 고금리 상품은 물론 실손의료보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면서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11일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보험계약 재매입 해외사례 및 시사점’ 보고서는 이러한 국내 보험업계의 현실과 제도 도입을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한다.
■고금리 계약의 무게와 실손보험의 늪
보험계약 재매입이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해지환급금 외에 추가적인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계약 해지를 청약하는 제도다. 보험사가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해 소비자에게 ‘미래의 기대 이익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일종의 거래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원석 동아대학교 조교수는 도입 필요성의 배경으로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을 지목했다. 그는 “부채를 시가(현재 가치)로 평가하게 되면서, 과거에 판매한 고금리 상품이 장부상 막대한 부채로 잡히게 됐다”며 “금리가 하락할수록 이 부채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보험사의 건전성을 위협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 말 생명보험 업무보고서를 보면 그 부담은 명확하다. 국내 생명보험사가 안고 있는 연 7.5% 이상 고금리 계약 규모는 88조원에 육박하며, 이는 보험사들이 해당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최소 6조6000억원의 막대한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 논의가 실손의료보험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손해율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른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적정한 프리미엄을 주고 계약을 청산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장의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인 적자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해외 보험사, 돈 주고 리스크를 사다
해외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무건전성 회복을 위해 이 제도를 활발히 활용해 왔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벨기에의 에티아스(Ethias)다. 2008년 파산 위기에 몰린 에티아스는 해지환급금의 10~25%를 프리미엄으로 얹어주는 조건을 내걸어 고금리 보증계약 준비금의 94% 이상을 축소하며 기사회생했다.
미국에서는 사업 구조조정 수단으로 쓰였다. 하트포드(Hartford)와 보야(Voya)는 변액연금의 최저보증 리스크를 털어내기 위해 재매입을 제안했다. 하트포드는 대상자의 30%가 응했고, 보야 역시 해당 사업 부문 순유출의 60%를 재매입으로 해결하며 수익성 높은 분야로 체질을 개선했다.
■도입 전제조건 “공정한 가격과 소비자 보호”
정 교수는 “국내 도입 시 무엇보다 엄격한 소비자 보호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전문가인 보험사가 비전문가인 개인에게 제안하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리미엄 산정 기준의 합리화다. 재매입 프리미엄은 단순 해지환급금이 아닌, 계약자가 계약 유지 시 얻게 될 ‘미래의 기대 이익’을 기준으로 산정해야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불완전 판매나 부당한 권유를 막기 위한 장치도 필수적이다. 설계사가 수수료를 목적으로 고객에게 불리한 해지를 유도하는 ‘승환계약’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재매입 제안은 우편이나 이메일 등 단방향 매체로만 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아울러 소비자가 재매입 계약 체결 후에도 일정 기간 내에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 교수는 “보험계약 재매입은 보험사의 재무 리스크를 줄이고, 목돈이 필요한 소비자에게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파레토 개선(모두의 효용 증대)’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금융당국은 정보가 부족한 계약자를 보호하고, 노후소득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