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90세 이후에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찾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에 나선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닌 평소 살던 집에서 일상생활을 스스로 수행하는 9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장기간 건강 변화를 추적하는 '한국인 초고령자 코호트'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고 15일 밝혔다.
코호트란 특정 특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일정 기간 반복 조사해 건강 변화나 질병 발생, 기능 저하 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파악하는 연구 방법이다. 이번 연구는 2028년까지 약 1,000명의 참여자를 모집해 건강 상태, 생활 습관, 신체 기능, 인지 능력, 사회적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장기 추적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90세 이상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90세 이상 인구는 2020년 27만 4천여 명에서 2025년 37만 4천여 명으로 5년 새 약 10만 명(36.5%) 증가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2~2072)는 90세 이상 인구가 2022년 약 27만 명에서 2052년 약 200만 명으로 7.4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같은 기간 70대(약 2.0배)와 80대(약 3.2배)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국립보건연구원은 그동안 한국인유전체역학조사사업 노화심층 조사, 한국도시농촌어르신 연구, 노인노쇠코호트 연구 등을 통해 한국인의 건강 노화 및 노쇠 위험 요인을 파악해왔다. 그러나 주로 중장년층과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해 90세 이상 초고령층에 대한 연구 데이터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번 초고령자 코호트는 빠르게 증가하는 초고령층의 건강 특성과 기능 유지·변화 등 성공적 노화의 결정 요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초고령자 보건의료 정책 수립에 필요한 근거 자료를 생산하기 위해 추진된다. 국가 건강노화 연구 인프라를 90세 이상까지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보건연구원은 본격적인 코호트 구축에 앞서 2025년 예비조사를 실시해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했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유지되는 90세 이상 재가 노인 118명(평균 연령 92.9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고령자도 다양한 건강 특성을 보이는 집단임이 드러났다. 신체 기능은 63.6%가 중간 이상 수준이었고, 80% 이상이 종교 활동이나 복지관·경로당 이용 등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약 60%가 높은 수준의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시력은 비교적 양호했으나 청력 불편이 확인됐다.
지역 간 차이도 두드러졌다. 서울 강남구와 강원도 평창군 거주 초고령자를 비교한 결과 신체 기능과 기본 건강 수준은 큰 차이가 없었으나, 사회 활동 참여와 디지털 기기 활용, 정서적 지원 체계 등 사회 환경 영역에서는 차이가 뚜렷했다. 스마트폰 보유율은 도시 지역이 농촌 지역보다 약 7배 높았고, 위기 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농촌 지역에서 약 3배 높았다. 농촌 지역에서는 우울 위험과 자살 생각 경험도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음성 기반 AI 건강관리 서비스가 초고령자에게 적용 가능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AI 안부전화는 95% 이상의 높은 참여율을 보였고, 스마트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전화 기반 음성 응답으로 참여할 수 있어 비대면 건강 모니터링 수단으로 활용 가능성이 입증됐다. AI 응답 자료에서는 낙상이나 입원 같은 건강 이벤트 발생 이후 건강 상태가 악화되는 양상도 관찰됐다.
전재필 국립보건연구원 미래의료연구부장은 "90세 이상 어르신의 건강 변화를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장기 추적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국립보건연구원이 오랫동안 쌓아온 코호트 구축·운영 경험을 토대로 신뢰도 높은 국가 건강노화 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초고령사회 대응의 핵심은 오래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질병관리청은 건강 노화와 노쇠 예방, 돌봄 부담 완화에 필요한 과학적 근거를 생산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마련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코호트 구축 사업은 7월부터 참여자 모집과 본격 조사가 시작된다. 구축된 데이터와 인체 자원은 국내 연구자와 민간 분야에 개방해 초고령자의 건강 관리, 노쇠 예방, 장기 요양·통합 돌봄 등 보건의료·돌봄 정책의 과학적 근거 생산에 활용될 예정이다.
한편 일본, 미국, 중국,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1990년대 전후부터 초고령자 장기 추적 코호트를 운영하며 건강 장수 요인, 치매, 노쇠, 인지 기능, 사회적 고립 등을 연구해왔다. 한국인 초고령자 코호트가 구축되면 국제 비교가 가능한 한국형 연구 기반이 마련돼 초고령사회 대응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