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아주 오래된 영화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인간을 지켜보고 보호하던 두 천사는 문득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커피는 어떤 맛일까?’
‘돌멩이를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영원히 살아가는 천사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의 감각이 오히려 신비롭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중 한 천사는 진짜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한 시간 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바로 지금…, 더 이상 영원이란 말은 싫어…, 전능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예감이라는 것도 좀 느껴보고… ‘아!’, ‘오!’ 이렇게 외치고 싶어.”
천사에게 인간의 삶은 불완전해 보입니다. 언젠가는 늙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결국 고통속에 죽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유한함 때문에 인간의 삶에는 천사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그리스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붙잡아야 할 결정적인 순간을 뜻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릅니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다릅니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 지금 아니면 놓쳐버리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매일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카이로스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던 ‘그때’는 언제나 ‘지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을 살아갑니다. 영원히 가질 수 없기에 지금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이 움직이고, 따뜻한 커피 한 잔에도 행복을 느낍니다. 그것이 유한한 인간에게 주어진 진짜 아름다움인지 모릅니다.
영화 ‘트로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여사제 ‘브리세이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모두 죽거든.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거야. 우리는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지금 넌 가장 아름다워. 이 순간은 다시 안 와.”
신들은 영원하지만 인간은 죽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인간에게는 신에게 없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살아가는 것. 젊음도 지나가고, 사랑도 변하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하는 시간도 언젠가는 끝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습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흘러가고, 우리도 변하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이 다르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같지 않습니다.
오늘의 하늘도, 오늘 마신 커피의 온기도,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다시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애써 붙잡으려 하는 하루하루도 사실은 지금 이 순간 흘러가고 있습니다.
헤어짐이 있기 때문에 곁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고, 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으며,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지만 어쩌면 신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신들은 영원을 가졌지만, 인간에게는 ‘지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영원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바람을 느끼고, 오늘의 커피를 마시고,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천사가 그토록 원했던 그 말을 우리도 조용히 건네보면 어떨까요.
지금.
바로 지금.
김태우
한화생명 63WM센터장 |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보험신문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