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눈 병오년 앞둔 보험, 위축 대신 ‘도약’을 말하자
최근 보험업계 안팎에서 ‘보험이 어렵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성장 둔화와 규제 부담, 소비자 신뢰 하락까지 보험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보험이 ‘어렵다’는 말에 갇혀 있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수입보험료 기준 20개 국가 중 7위(2022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무시 못 할 규모를 자랑한다. 생명·손해보험협회장은 최근 ‘2025 보험범죄방지 유공자 시상식’에서 국내 금융산업의 핵심축으로 ‘보험’을 추켜세우면서도 보험사기와 같은 ‘새는 독’에 대한 우려를 잊지 않았다. 몸집이 큰 산업일수록 작은 균열이 전체의 신뢰를 흔든다는 점을 인식하고, 민감하게 대응한다는 의미다.
법인보험대리점(GA)업계에서 40년 가까이 몸담아온 한 임원은 “내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보험산업은 포화·정체 산업이라고 불렸는데, 그 꼬리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보험설계사를 포함해 업권에 직·간접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력이 종사하고 있고, 장기자금으로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핵심 산업임에도 쇠퇴 산업처럼 취급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보험산업이 위축을 느낄 만한 부분이 여러 군데 포진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보험은 그 구조가 너무 복잡해 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조차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며 “보험에는 사고, 질병, 사망 등이 결부돼 있어, 다른 금융상품보다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타 금융권에서 보험권으로 발들인 이들의 시선도 비슷하다. 기자가 만난 업권 인사들은 “국내 가구당 보험 가입률이 100%에 육박(2019년 보험소비자설문조사, 98.2%)하는 데다, 저출산·고령화 기조가 겹쳐 앞으로는 내수시장에만 기대면 업권이 쪼그라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험산업뿐 아니라 보험 권역을 취재하는 언론의 시야도 넓어져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보험을 특정 상품이나 규제 이슈에 가두지 말고 금융·산업·자본시장과 연결해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런 인식은 최근 보험권 인사 관행과도 맞닿아 있다. 보험사 대표이사 임기는 기본 2년에 1년 연장이 관행처럼 이어져 왔는데, 이는 기업의 장기 전략을 세우고 성과를 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이환주 KB라이프 대표가 KB국민은행장으로 이동한 사례는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보험권에서 쌓은 전문성이 제1금융권 수장으로 이어진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
보험 전문 인력을 둘러싼 고민은 감독당국에서도 엿보인다. 금융감독원 원장이 바뀌었음에도 보험 부원장보 자리가 장기간 공석인 점이 그렇다. 일각에서는 “감독원 내부에서 보험권 경력을 갖춘 인재 풀(pool)이 제한적인 탓에 인선이 쉽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는 기관 내 보험에 대한 관심도와 전문성이 그만큼 희석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련의 경험을 종합하면, 보험은 오랫동안 ‘어렵고 느린 금융’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그 느림은 안정성, 지속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보험이 없었다면 금융은 지금보다 단기 수익에 치우쳤을 테고, 국가 경제의 완충 장치 기능도 훨씬 취약했을 것이다. 현재 보험산업이 처한 성장의 정체를 산업 자체의 한계로 규정하기보다,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다. 불의 기운과 말의 에너지가 결합된 병오년(丙午年)은 전통적으로 변화와 도전에 적합한 해, 확장과 도약이 활발히 이뤄지는 시기로 해석된다. 움츠러들기보다는 방향을 정하고 힘차게 내달릴 때 어울리는 상징이다.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인구 구조 변화와 성장 둔화, 신뢰 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가 먼저 움츠러들 이유는 없다. 보험은 여전히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긴 호흡의 자금을 다루고 대다수 국민의 삶과 맞닿아 있는 산업이며,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중심을 지켜 온 경험과 저력이 있다.
병오년을 앞둔 지금, 보험은 다시 한번 금융의 중심에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방어에만 머무르기보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다. 보험이 힘차게 나아가면, 금융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이 돌 것이 분명하다. 부디 내년에는 보험산업이 위기의 주체로서 전전긍긍할 것만이 아닌, 은행과 함께 금융권 선두로서 당당히 나아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