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유전자 분석, 정밀의료 등 의료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보험업계의 지형도가 요동치고 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1일 공개한 ‘의료 혁신이 보험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이러한 변화가 보험상품 구조와 위험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할 시점에 왔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AI 기반 영상분석, 액체생체검사, 유전자 치료,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등이 앞으로 보험업계의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 혁신이 소비자에게는 조기 진단과 치료 기회를 제공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상품 설계와 손익 관리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건강보험 상품이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국내 실손보험에서는 비급여 진료 증가와 신의료기술 확산으로 지급보험금이 지난해 17조원에 이르고, 적자 규모가 1조9000억원까지 치솟는 현상이 벌어졌다. 미국의 경우 민간 건강보험 손해율이 2022년 85.0%에서 2024년 89.0%로 상승하며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새로운 의료기술 대부분은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되기 전 비급여 시장을 통해 도입된다. 치료 효과가 확인돼도 초기에는 환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연구원은 혁신 치료제 처방이 확대될수록 단기적으로 보험금 청구가 늘고 보험사 손익이 악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민간 보험사에게는 새로운 성장 기회도 열리고 있다. 첨단 치료법을 보장하는 특약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중입자치료, CAR-T 치료, 표적항암치료 등 첨단 암 치료 관련 보장을 확대하는 보험사들이 늘어나는 것이 그 예다.
암 치료 패러다임 변화는 보험상품 구조를 세분화하고 있다. 과거 암 진단금 중심이던 시장이 특정 치료법과 신약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화 중이다. CI보험(중대질병보험)도 예외가 아니다. 액체생체검사 같은 조기진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중증질환이 초기 단계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늘어나면, 기존의 질병 정의와 보험금 지급 기준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망보장 상품 역시 유전자 치료와 정밀의료가 기대수명을 늘리면서 보험료 산출 체계를 새롭게 조정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홍예림 보험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의료 혁신에 대응하기 위해 보장범위·보험상품·인수심사·비용구조·규제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험사가 유전자 정보와 개인건강 정보를 활용할 때 정보보호와 공정성 문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보험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규제와 기술 발전 속도 간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