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료기술 시대… 보험산업 판도도 바뀐다
인공지능(AI)과 유전자 분석, 정밀의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보험산업도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의료 혁신이 소비자에게는 혜택이 될 수 있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상품 구조와 위험관리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험연구원은 지난 1일 발표한 ‘의료 혁신이 보험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의료기술 발전이 보험상품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AI 기반 영상분석과 액체생체검사, 유전자 치료, GLP-1(Glucagon-Like Peptide-1) 계열 비만 치료제 등이 향후 보험산업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건강보험 상품 영역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했다. GLP-1 약물은 향후 5년 내 주요 질환의 치료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유전자 치료는 의료 패러다임을 ‘질병 치료’에서 ‘유전적 위험 제거’ 중심으로 전환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혁신 치료제가 본격 확산될 경우 처방 확대에 따른 보험금 청구 증가로 보험사의 손익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실손보험에서 유사한 현상을 보였다. 지난해 실손보험 지급보험금이 17조원 규모로 늘고 적자 규모도 1조9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됐다. 비급여 진료 증가와 함께 로봇수술과 중입자치료, 첨단 검사기술 등 신의료기술 확산 역시 손해율 상승 요인으로 거론된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체계에 편입되기 전 비급여 형태로 시장에 도입되는데, 치료 효과가 입증되더라도 초기에는 환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연구원은 혁신 치료제 처방 확대가 단기적으로 보험금 청구 증가와 손익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미국 건강보험 상품 산업 손해율은 2022년 85.0%에서 2024년 89.0%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건강보험을 판매하는 민간보험 시장에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기술이 발전할수록 보험사들은 새로운 치료법을 보장하는 특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험업계가 중입자치료와 CAR-T 치료, 표적항암치료 등 첨단 암 치료 관련 보장을 확대하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신의료기술 확산으로 암 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보험사들은 치료비 특약 경쟁에 나서고 있다. 과거 암 진단금 중심 상품에서 벗어나 특정 치료법과 신약을 보장하는 형태로 상품 구조가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CI보험도 변화가 예상된다. 보험연구원은 액체생체검사와 같은 조기진단 기술 발전으로 중증질환이 초기 단계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늘어나면 CI보험의 질병 정의와 보험금 지급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에는 중증 단계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설계됐지만, 조기 발견이 일반화될 경우 지급 기준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망보장 상품 영역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 치료와 정밀의료 발전은 기대수명을 늘리고 사망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향후 사망률 가정과 보험료 체계를 새롭게 조정해야 할 수 있으며, 기존에 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질환 보유자의 가입 기회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홍예림 보험연구원은 의료 혁신이 의료시스템과 보험산업에 미치는 근본적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보장범위와 보험상품, 인수심사(언더라이팅), 비용구조, 규제 대응 전반에 대한 설계를 보완할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보험회사는 유전자 정보 및 개인건강 정보 활용과 관련한 정보보호 및 공정성 이슈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