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인보험대리점(GA)은 2000년대 초반 외환위기 이후 보험산업 구조조정 등을 겪으며 보험회사 퇴직 임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법인독립대리점이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보험판매조직이다. 여러 보험회사의 상품을 동시에 취급하며 소비자에게 비교 선택의 폭을 넓혀준 GA는 보험시장의 제판분리라는 글로벌 대세에 편승해 보험 유통의 핵심채널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급격한 성장의 이면에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해 왔다. 과열된 수수료 경쟁과 단기 실적 위주의 영업은 불완전판매와 계약 유지율 저하로 이어졌다. 최근 보험GA협회를 중심으로 내부통제와 자율규제가 강화되면서 대형 GA의 불완전판매와 계약 유지율 지표 등은 상당히 개선돼 보험회사들을 능가할 정도가 됐다.
보험회사는 GA와의 관계에 있어서 매출을 증대시켜 주는 역할에는 호의적이지만 자사의 브랜드 신뢰 하락을 우려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GA는 보험회사의 과도한 통제에 불만이 존재하여 양측은 협력보다 갈등의 프레임이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GA 대상 ‘판매위탁 리스크 관리제도’를 12월부터 도입한다고 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보험회사가 GA를 평가한다면 GA도 보험회사를 평가해야 한다며 GA 업계 내에서는 맞불을 놓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보험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보험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상생의 첫걸음은 수수료 체계의 합리화다. 보험회사는 수수료 체계나 지급 조건을 활용해 GA를 사실상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는 경우가 있다. 실적이 많은 GA에는 우대 수수료를, 적은 GA에는 삭감된 수수료를 적용하는 등 수수료 제도를 통해 통제하거나, 내부 사유로 수수료 지급이 지연되거나 과실 없이 환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는 GA의 자율적 영업을 제약하고, 특정 보험회사 중심의 종속 구조를 심화시킨다. 수수료 체계에 있어 단기 판매 실적 중심에서 벗어나 계약 유지율, 고객 만족도, 불완전판매율 등 질적 지표를 반영한 보상구조가 필요하다. 아울러 판매 초기보다 계약의 유지와 고객 만족에 인센티브를 집중하면 설계사의 영업 행태가 자연스럽게 장기적 신뢰 중심으로 바뀔 것이다. 이는 GA의 수익 안정성과 보험회사의 유지율 개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길이다.
둘째 품질관리와 윤리교육 체계 등을 공동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품이해도, 영업윤리와 소비자보호 교육을 통해 불완전판매를 줄이고 시장 전반의 신뢰를 회복하는 기반이 확립돼야 한다. 보험GA협회는 올해 상반기 ‘GA 특화형 보험모집인 자격제도’ 도입 방안을 연구·발간했고, 시행을 추진하기 위해 정책당국과 조율하고 있다. 이 제도는 GA설계사의 기본자질 및 전문지식 함양과 실무능력 배양을 위한 것으로 보험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동안 수차례 추진됐던 ‘보험판매전문회사제도’ 도입에도 촉매제가 될 것이다.
셋째 디지털 협업과 데이터 공유 강화가 상생의 핵심이다. 보험회사와 GA가 CRM 데이터를 공유해 공동 CRM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맞춤형 보장 컨설팅과 계약 유지율 관리가 한층 정교해질 수 있다. GA가 수집한 건강정보나 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보험회사의 언더라이팅 시스템과 연계하거나, 고객 프로파일을 활용해 리스크 평가와 상품 추천의 정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GA와 보험회사는 이제 단순한 판매 위탁 관계를 넘어 보험 생태계를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로 인식돼야 한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수수료 체계, 윤리적 판매, 데이터 기반 협업이 정착된다면 양측은 물론 소비자와 산업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보험의 본질은 ‘신뢰’다. GA와 보험회사가 진정한 파트너십을 통해 신뢰 기반의 유통 생태계를 구축할 때 우리 보험산업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순재 소장
RMI보험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