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눈 금융과 정책 시계의 불협화음 : 정책은 짧지만 금융은 길다
[기자의 눈] 금융과 정책 시계의 불협화음 : 정책은 짧지만 금융은 길다
정책 변화는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산물이지만, 그 변화가 빈번하거나 방향이 자주 바뀌면 일관성에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행정·정책학에서는 이를 '정책 단절(Policy Discontinuity)' 또는 '정책 일관성 훼손(Policy Inconsistency)'이라 부른다. 특히 금융권에서 정책 단절이 발생하면, 투자 판단에서 장기 전략까지 흔들리는 건 한순간이다.
하반기 들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금융당국 수장 교체가 이어지면서 기관의 정책 방향 전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에 금융권은 은행·보험 할 것 없이 '변화에 발맞춘 대응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휩싸여 있다.
금융정책에서 리더십이나 기조가 바뀌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것은 불확실성의 확대다. 기존 정책과 감독체계가 바뀌면 과거 기조에 맞춰 설계된 금융사들의 리스크관리나 자본조달 전략이 대부분 무용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사는 장기 운용 전략과 리스크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정책 기조가 바뀌면 이를 재설정해야 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이처럼 제도적 불확실성은 금융권의 예측 가능성을 낮추고, 장기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책 단절이 잦아지면 투자·운용에 대한 장기 계획도, 규제·감독 기준이나 회계처리 방식 변화에 따라 계획 자체가 초기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같은 현상은 인사제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제22대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현실이 지적됐다.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는 윤한홍 위원장이 이찬진 금감원장에게 전임 원장 산하 간부들의 사표 수리 여부를 질의했다. 이는 원장이 바뀔 때마다 간부진이 '물갈이'되는 관행이 조직 안정성과 정책 연속성을 저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이 원장은 "국정감사 이후 업무 연속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인사를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업계 현장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이 나온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특히 장기보험이 많은 생명보험 특성상 10년 이상 대표를 해야 비전과 혁신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임기가 짧다 보니 2~3년 안에 실적을 내기 위해 덤핑 상품을 출시하고, 그 결과 10~20년 후 손실이 누적된다"며 "유능한 인물이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혁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대한 투자 확대 독려와 동시에 건전성 유지 요구를 병행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을 필두로 한 금융권은 여전히 자본 건전성 및 리스크관리 규제가 엄격하다. 이처럼 '투자를 늘리라'는 정책 목표와 '안정성을 유지하라'는 규제 간 균형추는 정책 일관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정책 단절이 반복되면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관리하게 되고, 이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자금 흐름을 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대로 급격한 규제 완화가 이루어졌다가 다시 강화되면, 금융기관은 투자 확대 과정에서 리스크를 과도하게 떠안게 된다.
정책 단절은 단순히 리더십 교체의 부작용이 아니라 금융정책의 신뢰 기반을 흔드는 구조적 문제다. 금융정책의 연속성과 예측 가능성이 깨지는 순간, 금융권은 전략 수립부터 리스크관리까지 전반적인 부담을 떠안게 된다.
금융당국이 조직 개편과 정책 방향 전환을 추진하는 현시점에서, 금융권이 느끼는 불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금융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금융기관이 '다음 분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바라보며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이 투자로, 투자가 생산성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매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이 초기화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금융은 안정성도, 도전성도 잃게 될 것이다. 정책의 유연함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로드맵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지속 가능한 금융권으로의 발판이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