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로 직업이자 인생 철학이었던 보험 — 정년에 즈음하여 —
돌이켜보면 내 인생과 보험의 인연은 아주 우연한 곳에서 시작됐다. 대학 시절 보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우연히 접한 “1인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1인을 위해”라는 말이 내 영혼을 울렸다. 한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이 함께 그 위험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 그것을 개인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고 하나의 제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보험이었다.
그때부터 보험에 매료돼 손해사정사 공부를 시작했다. 첫해 1차 시험은 여유 있게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평균 60점 합격선에 59.67점을 받아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억울한 점수였다. 0.33점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이 갈렸다. 화가 나기도 했고, 허탈하기도 했다. 분하고 원통했지만, 그 실패가 내 인생을 바꿨다.
다음 해에는 관련 책을 거의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고, 보험계약법은 조문을 모두 녹음해 수백 번 들으며 암기했다. 결국 합격했고, 1년을 더 공부했던 것이 훗날 학자로서의 자양분이 됐다. 첫해 불합격 때는 크게 좌절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0.33점은 실패가 아니라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인생의 역경은 극복하면 오히려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 얻은 이 교훈이 내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헤쳐 나가는 데 큰 힘이 됐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여러 회사에서 추천이 들어왔지만, 나는 끝내 보험회사를 고집했다.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들고 손해사정부서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보험인’의 길이 시작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의 길을 걷게 됐다.
이 같은 보험과의 인연은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직장에서 하나의 커다란 마침표이자 새로운 시작인 정년을 맞게 됐다. 정년이 가까워지자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예전에는 수업 시작 5분 전 헐레벌떡 강의실로 향했지만, 정년을 앞두고는 일부러 일찍 나와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았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탑돌이 하듯 건물을 돌다가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은 예배당이 됐고, 그 안에는 학생의 모습으로 온 예수가 가득했으며, 수업은 기도가 됐다. 진즉부터 이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보험은 내 직업이었지만 동시에 내 삶의 철학이기도 했다. 혼자 위험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위험을 나누는 것. 어쩌면 인생도 보험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혼자 잘사는 것보다 서로의 삶에 작은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잘사는 삶이 아닐까.
정년 이후의 삶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보험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사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내일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 내일이 당연히 올 것처럼 생각하고, 다음 달이 있고 내년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정년을 앞두고 시한부 직장생활을 하며 깨달은 것은 인생에서도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늘 죽음을 인식하며 오늘의 삶을 착하게, 알차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점이다.
안도현 시인은 “삶이란 / 나 아닌 그 누구에게 /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 했다. 나의 삶은 어땠나.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대부분 나 자신을 위한 열정이었다.
이제 정년 후의 삶은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따뜻한 연탄 한 장 되어주는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동안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 쓰는 경제학자’, ‘보험 전문가’의 삶도 이어가겠지만, 예컨대 ‘동시 들려주는 할배’로서 봉사 겸 아이들에게 시와 글쓰기 등을 가르치며 창의력과 더불어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그런 일들도 해 보고 싶다.
이경재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 시 쓰는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