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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시대… 보험사, 원리금보장형 구조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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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수탁법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저비용 운용과 성과 중심의 경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험연구원이 9일 발간한 '호주·영국의 기금형 퇴직연금 비교와 보험산업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0년 255조5000억원에서 2025년 말 501조4000억원으로 5년 만에 약 2배 증가했다.

그러나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자산이 집중되면서 수익률은 2~3%대에 머물고 있다.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고 자산을 운용해야 하는 부담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이다.

지난 2월 노사정 공동선언에서는 퇴직급여의 사외적립을 의무화하고 확정기여형(DC)에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금융기관 개방형과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 등을 마련해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과 병행하는 방식이다.

보험업계는 기금형 시장 도입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보험사는 투자중개업 인가가 없어 상장지수펀드(ETF)를 실시간으로 거래하기 어렵고, 특별계정 중심의 운영체계로 상품 운용에도 제약을 받는다.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행된 이후에는 ETF와 펀드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로 퇴직연금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2025년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율은 26.5%로 보험업권의 7.4%를 크게 웃돌았다.

호주는 금융기관 중심의 기금형 퇴직연금이 경쟁력을 잃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호주 금융기관형 기금(Retail Funds)의 자산 점유율은 2004년 9월 33.1%에서 2025년 6월 19.6%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비영리 산업형 기금 점유율은 11.6%에서 36.2%로 확대됐다.

금융기관형 기금은 그룹 내 자산운용사와 자문사, 판매채널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면서 운용·자문·플랫폼 수수료가 중첩됐다. 모회사 임원 중심의 이사회 운영으로 수탁자 독립성과 이해상충 관리도 미흡했다. 이후 호주 4대 은행은 퇴직연금과 보험·자산운용 사업을 대부분 매각하는 등 시장에서 영향력이 축소됐다.

반면 영국에서는 여러 기업이 하나의 연금기금에 가입하는 '마스터트러스트'가 기금형 퇴직연금의 중심으로 정착했다. 마스터트러스트는 사전인가제, 총수수료 상한, 제도 자금조달자(Scheme Funder)와 독립 수탁법인의 분리, 다층적 감독체계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2025년 기준 마스터트러스트는 영국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전체 회원의 92%, 자산의 83%를 차지했다. 영국은 최근 기금 통합과 가치 대비 비용(VFM) 평가체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부터 대형 디폴트 운용기금(MSDA) 규모 요건을 적용해 규모의 경제와 운용 효율성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보험회사는 기금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지만 투자와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독립 수탁이사회가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리걸앤제너럴(Legal & General), 아비바(Aviva), 스탠다드라이프(Standard Life) 등 보험회사 계열 사업자도 마스터트러스트 시장에서 규모를 키우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기금형 퇴직연금의 정착을 위해 수탁법인 사전인가제를 도입하고 독립적인 지배구조와 이해상충 방지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수료와 운용성과, 서비스 품질을 비교할 수 있는 가치 대비 비용(VFM) 중심의 공시체계를 마련할 필요성도 제시했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김진억 수석연구원은 "보험업계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며 "저비용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수탁자 책임 중심의 독립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한편, 그룹 차원의 자산운용 역량과 대체투자 전문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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