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는 2026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고인덕, 이세영, 한흥근, 정시해 선생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들은 의병에서 독립군까지 이어지는 무장독립투쟁에 헌신한 인물들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립운동의 연속성을 보여주었다.
무장독립투쟁은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되찾기 위해 전개된 항일운동이다.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이어지며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었고, 국내를 넘어 간도, 연해주, 중국 관내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독립운동의 기반을 이루었다. 무장투쟁은 단순한 군사행동을 넘어 비밀결사 조직, 군사교육, 자금 조달, 의열투쟁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독립운동의 핵심 축이었다.
고인덕 선생(1887년~1926년)은 의열단의 비밀 후원자로 활동하며 밀양을 중심으로 청년운동과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폭탄 제조기와 폭약을 제공해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를 지원하고, 사재를 의열단 활동 자금으로 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지만, 결국 일제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
이세영 선생(1869년~1941년)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의병전쟁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후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 조선혁명당, 중한항일의용군 조직 등에 참여하며 의병에서 독립군, 중국 관내 항일연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한흥근 선생(1890년~1944년)은 교사로 재직 중 민족교육운동에 투신했으며, 이후 만주로 망명했다가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운동 동지를 규합했다.
그는 강우규 지사의 남대문역 투탄의거를 지원하고, 이후 만주와 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항일유격대를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정시해 선생(1874년~1906년)은 을사늑약 이후 최익현 의진에 합류하여 호남과 영남 곳곳에서 병력을 모으고 전투를 이끌었다. 순창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면서도 끝까지 국권 회복 의지를 유언으로 남기며 초기 의병항쟁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무장독립투쟁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숱한 역경과 희생을 대변한다.
그들은 국내외의 열악한 여건과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무기를 놓지 않았으며, 이는 마침내 광복을 이루는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