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의 역사적 기원은 17세기 말 런던의 로이즈 커피 하우스에서 상인과 선주들이 위험을 분담하는 방식에서 시작됐다. 배 한 척이 침몰해도 누구도 혼자 파산하지 않도록 위험을 쪼개 함께 지는 약속이 근대 보험의 출발이었다. 보험법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학자는 이 오래된 약속의 힘을 믿어 왔다고 밝혔다. 고대 로마의 콜레기아에서 중세 길드의 상호부조를 거쳐 오늘날의 보험산업에 이르기까지, 보험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여럿이 나누는 연대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위험 분담의 울타리 안에 모든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보험료가 부담스럽고, 병력이나 고령, 불안정한 일자리는 가입과 유지의 문턱을 높인다. 위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위험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 모두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지적됐다. 보험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보험으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으며, 생활이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해지되는 것도 보험이다.
지난 5월 김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만난 세 살배기 아이를 둔 젊은 엄마는 누적된 채무 문제로 생계가 막막해 아이의 보험마저 해약하려 고민하고 있었다. 당장 보험료를 아끼는 순간 위험에 대응할 마지막 완충장치가 사라지고, 보장의 공백은 다음 위기에서 빚이 되어 돌아온다는 설명이다. 특히 채무조정을 상담받은 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는 그 이후로, 이때 발생하는 한 번의 사고나 질병이 회복 중인 가계를 다시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을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융이 필수재가 된 시대에 최소한의 금융은 시혜가 아닌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무조정으로 부채를 정리하고 기초적인 보장으로 위험을 차단하며 대출과 저축으로 자립에 이르는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가운데 ‘기초보험’은 생존권의 영역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겨우 일어선 사람이 한 번의 사고로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공적 보장 체계를 사회가 마련하자는 취지다.
기초보험은 전 국민을 보편적 대상으로 삼되, 시행 초기에는 취약계층부터 우선 보장하는 이중 구조로 설계할 수 있다고 제안됐다. 상환 능력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위험부터 차단해야 대출과 저축, 자립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원 조성 방식이나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 기존 실손보험과의 보장 범위 조정 등 법적·제도적 과제가 남아 있다. 이 과제를 현실성 있게 풀기 위해서는 위험을 계량하고 보장을 설계해 온 보험업계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덧붙여졌다.
업계는 지자체와 연계한 상생보험, 보험료 할인과 납입유예 같은 포용금융의 걸음을 이미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 걸음이 일회성 사회공헌에 머물지 않고 지속가능한 제도적 인프라로 이어지도록 기초보험 논의의 테이블에 업계가 함께 마주 앉아 주기를 바란다는 기대가 전해졌다. 보험은 위험 앞에 선 사람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됐으며, 그 약속이 신용점수와 소득의 문턱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초보험이 하려는 일이라고 강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