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을 열고 다시 잠그는 금융당국의 딜레마가 보험업계와 자본시장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도 죽었고, 과포화 상태인 보험시장에서 생명보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뭘까 생각하게 돼요.” 과거 기자가 만난 한 생명보험사 소속 설계사는 이렇게 씁쓸한 푸념을 털어놨다. 한때 생보업계의 주력 상품이었던 종신보험의 입지가 좁아진 데 이어, 시장의 유일한 활로로 꼽히던 단기납 종신보험마저 금융당국의 규제로 동력을 잃은 현실을 두고 나온 말이었다.
단기납 종신보험의 열기가 잦아들고 생보사들이 복합형 종신보험 등 대체 상품으로 눈을 돌리는 시점에 그의 말이 떠오른 이유는, 최근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둘러싸고 골머리를 앓는 증권시장을 보며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후 불과 50일 만인 지난 16일 기본예탁금을 3000만원으로 상향하고 신규 상장을 잠정 중단하는 등 고강도 억제책을 내놓으면서, 자본시장 역시 보험업계와 유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두 상품은 본래 명확한 정책적 필요와 시장의 요구에 응답하며 출시됐다. 레버리지 ETF는 해외 증시로 빠져나가는 개인투자자 자금을 국내 자본시장으로 돌리고, 투자자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새 보험회계 국제기준(IFRS17) 도입에 대응해 보험사의 미래 수익성 지표인 계약서비스마진(CSM)을 확보하는 동시에, 장기 계약을 외면하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납입 기간을 대폭 줄인 결실이었다.
그러나 시장에 출시된 이후 공급자 간 과당경쟁과 투자자들의 고수익 추구 경향이 결합하면서 본래 설계 의도는 급격히 왜곡됐다. 종신보험은 ‘비과세 저축’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졌고, 레버리지 ETF는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적 거래 논란에 휩싸였다.
과열 양상에 대응하는 금융당국의 모습도 닮아 있다. 당국은 자율 시정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주저 없이 칼을 빼들었다. 레버리지 ETF에 대해서는 기본예탁금의 현금 납입 의무화와 최소 매매수량 확대로 진입장벽을 급격히 높였고, 단기납 종신보험에는 환급률 경쟁 자제 요구와 해지율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기존 고환급률 판매 구조가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레버리지 ETF는 신규 상장이 잠정 중단됐고, 단기납 종신보험은 일부 보험사가 판매를 중단하거나 환급률을 낮춰 상품 구조를 개정하는 방식으로 시장 과열이 진정됐다.
문제는 이 같은 ‘속전속결’ 형태의 사후 개입이 금융시장에 남기는 부작용이다. 하나의 금융상품이 기획돼 시장에 출시되기까지는 상품 구조 설계와 법률 검토, 위험관리, 수익성 검증 등 다방면의 검토가 필요하다. 보험상품의 경우 계리적 가정과 지급여력 영향까지 따져야 한다. 그럼에도 시장 과열이 발생할 때마다 당국이 정책의 빗장을 손쉽게 잠그고 일률적 규제를 가한다면, 금융회사의 혁신적 상품 개발 의지는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품 개발자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환경에서는 어떤 금융회사도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적 상품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일률적인 강제 차단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제도의 빈틈을 노린 ‘우회 상품’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부른다. 단기납 종신보험의 5·7년납 환급률을 통제하자 곧바로 ‘10년 유지 시 보너스 지급’이라는 변형 상품이 출현해 시장을 다시 과열시켰듯, 투기적 열기는 또 다른 규제 차익을 찾아 이동할 뿐이다. 성급한 제동은 오히려 더 변칙적인 상품의 범람을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시장 과열을 정돈하고 개인투자자와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금융당국 본연의 책무다. 그러나 활성화를 유도하며 물꼬를 텄다가 불과 두 달 만에 엄격한 수문장으로 돌아서는 식의 국면 전환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지금 금융시장에 필요한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기습적 규제가 아니라, 상품 개발 단계부터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검토하고 시장 자율 통제 장치를 고도화하는 일이다. 억제와 차단만이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