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선의 독서 삼매경] 명분에 갇힌 조선, 현실을 놓치다
정치·외교적으로 보아도 조선의 입장에서 두 전쟁(왜란, 호란)은 성격이 매우 달랐다.
조선은 상국인 명과 거의 모든 면에서 시종일관 공조를 취하는 형국이었다. 일본이 공동의 적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한 전쟁이었으므로 일본을 대하는 관점이나 방식에서 의견이 나뉠 여지가 없었다. 즉 조선 조정의 합치된 인식은 명나라와 힘을 합쳐 일본군을 강토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후금은 조선의 태도 여하에 따라 공동의 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이미 쇠락의 길로 들어선 명나라를 위해 떠오르는 후금을 굳이 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는 물론 500여 년 전 고려가 금나라의 외교적 압력에 순응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선이 명과의 공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대후금 정책을 펼 수도 있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자체로 명·조선을 축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질서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 상황적 선택지를 광해군은 사용하려 했지만, 명에 대해 군신관계를 넘어선 부자관계로 이해한 조선 지배 엘리트들은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상놈과 국왕: 광해군의 그림자 외교관 하서국
(계승범 저자 / 역사비평사 / 2026년 05월 29일)
김종선
글로벌금융판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