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여름, 캄보디아의 한 범죄단지에서 스물두 살의 한국 대학생이 고문 끝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해 그 나라 범죄단지로 향한 청년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본디 통장을 팔러 간 이들이었고, 세탁할 돈이 사라지는 ‘사고’가 나면 명의자는 그 자리에서 감금돼 낯선 이를 속여 돈을 뜯는 온라인 사기, 곧 스캠(Scam) 범죄에 동원됐다. 국가정보원 보고에 따르면, 그 단지들의 한 해 수익은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육박했다. 통장 한 장을 팔러 간 청년이 어쩌다 제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르게 되었는가. 그 답을 찾으려면 지난 호, 카드대란으로 둑이 터지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둑이란 물을 막는 벽이고, 그 벽을 지탱하는 것은 신용을 심사하는 기능이었다. 미성숙한 여신(與信) 시스템 위의 그 둑이 무너지자 신용은 홍수처럼 밀려들었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2003년 한 해에만 372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쏟아졌다. 카드대란의 시작은 국가의 안일함이었다. 불어난 소득을 정교히 징세하는 대신 신용카드로 세원을 양성화하려 했고, 그 집행을 제도권 사금융인 카드사에 맡긴 것이다. 신용을 잃은 그들은 공금융은 물론 제도권 사금융의 문턱 밖으로도 밀려나, 어떤 등록도 감독도 없는 불법사금융의 음지로 향했다. 제도권의 문이 닫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이름 석 자, 곧 명의(名義)였고 그 음지에서 명의는 환금(換金)의 수단이 됐다. 불법 범죄조직이 이 원리를 파고든 것도 이 무렵이다. 추적되지 않을 타인의 이름으로만 흐를 수 있는 보이스피싱과 자금세탁의 돈이 깨끗한 이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빚에 몰린 쪽은 이름을 팔았고, 돈을 숨기려는 쪽은 그 이름을 샀다. 카드대란이 미래의 소득을 앞당겨 썼다면, 이제 시장이 노린 것은 이름 그 자체였다. 명의를 주인에게서 처음 떼어내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제도권이었다. 상환 능력을 묻지 않고 이름 석 자만으로 카드를 내준 일이, 한 사람의 신용을 그 실질에서 분리한 첫 거래였다. 명의를 실질에 묶어두던 심사의 끈이 풀리자, 명의는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 됐다. 역설은 깊어져 계좌의 문턱을 높일수록 그 문을 통과할 ‘깨끗한 명의’의 값은 도리어 올랐다. 금융범죄 조직은 표적에 따라 방법을 달리했다. 자산을 쥔 중장년층에게선 검찰을 사칭해 곳간을 직접 헐었고, 가진 것 없는 청년에게선 그 이름을 헐값에 사들였다. 절박한 공급과 희소한 수요가 만나는 자리에 시장이 섰다. 거기서 거래되는 상품이 대포통장이고, 흩어진 명의 계좌를 사 모아 넘기는 중간상이 ‘장집’이었다. 그리고 모든 거래가 그렇듯 위험은 가장 약한 자리에 쌓였다. 명의를 빌려준 이는 푼돈을 받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의 형사처벌과 ‘금융질서문란자’ 등재라는 또 한 번의 배제를 떠안았다. 카드대란이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과실이었다면, 대포통장은 그 위험을 처음부터 명의자에게 떠넘기도록 설계한 사업이었다. 명의마저 바닥난 자리에서 마지막 담보는 사람의 몸이었으니,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본 그 범죄단지가 바로 그 종착역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청년의 ‘아직 쓰지 않은 미래’를 헐어 쓴 약탈이었다. 카드대란은 아직 벌지 않은 소득을, 대포통장은 깨끗한 명의를, 캄보디아는 그 몸과 자유마저 가져갔다. 돌이켜 보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한 줄기였다. 조선의 환곡은 백성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시작해 얼마를 풀었는가를 다스림의 자랑으로 삼다 끝내 수탈로 굳었고, 그 빈자리는 전당포의 담보와 계(契)의 공동체가 메웠다. 그러나 국가는 같은 자리에서 거듭 넘어졌다. 1972년 8·3 긴급경제조치는 사채(私債)의 이자를 총칼로 3분의 1까지 깎으며 빌려준 서민을 비워뒀고, 2003년 카드대란은 심사 없이 카드를 쏟아부으며 빌리는 서민을 비워뒀다. 한쪽은 위험의 가격을 강제로 눌렀고 다른 쪽은 위험에 값을 매기지 않았을 뿐, 둘 다 ‘서민이 누구인가’를 건너뛴 채 신용의 양만 조절했다. 그 거듭된 실패의 중심에는 네 시대를 관통하는 한 구조가 있었다. 국가는 신용을 정책의 도구로 끌어다 썼을 뿐, 그 신용에 깃든 위험을 누가 나눌지는 끝내 설계하지 않았고, 비용은 늘 가장 약한 자리로 굴러떨어졌다. 신용을 창조하는 은행이 그 특권 때문에 위험한 차주를 기피하면, 돈을 만들지 못하는 사금융이 그 위험을 떠안고 거기서도 밀려난 이는 불법의 음지로 흘러든다. ‘서민’이 누구인지조차 정의하지 못한 정책이 그 역전을 바로잡기는커녕 되풀이했으니, 이는 우연이 아니라 부족한 설계가 낳은 필연이었다. 둑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더 높은 벽을 쌓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는 일이다. 그 보수는 카드대란 한 번의 응급이 아니라, 환곡 이래 되풀이해 온 그 구조를 끊는 일이어야 한다. 무너진 곳은 신용을 가려내는 심사 기능이었으니, 보수란 떨어져 나간 이름을 그 사람의 실질에 다시 묶는 일이다. 얇은 이력의 청년과 노년, 자영업자와 이주민까지 통신·공과금 같은 비금융 정보로 비추는 더 정교한 심사, 그리고 공급한 양이 아니라 몇이 제도권으로 돌아왔는가로 성과를 셈하는 일이 그 시작이다. 위험은 그것을 만든 손이 정직하게 지고, 속아 이름을 넘긴 이는 낙인이 아니라 제도권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환곡에서 시작해 카드대란을 건너온 이 600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같은 물음 앞에 다시 세운다.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신용을 설계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신용에 내재한 위험은 누가 짊어졌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