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우의 마음 장사 이야기 어느날 점심, 한 편의 ‘詩’가 찾아왔습니다
6월의 마지막 날, 점심시간이 유독 특별했습니다. 퇴사를 앞둔 직원의 부모님께서 회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좋은 직장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민망하고 몸 둘 바를 몰랐고, 함께 더 오래 일하지 못한 현실이 많이 미안했습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회사를 더 오래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을 테고 아쉬움도 작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자녀가 그동안 행복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을 먼저 표현하고 싶으셨다고 하셔서 “아! 이런 분도 계시구나” 하고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방문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저의 책 ‘나는 마음을 파는 장사꾼입니다’를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으로 한 걸음에 찾아오셨다고 하더군요.
어머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분이셨고, 눈과 귀로 사람과 소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나누던 중, 제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어머님은 문득 이준관 시인의 ‘구부러진 길’을 떠올리며 천천히 시(詩) 구절을 읊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구부러진 길’이라는 시를 아시나요. 듣고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적시고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볕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시의 한 구절 한 구절들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지난 30년 밥벌이의 삶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살면서 기쁠 때도 외로울 때도 있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으며, 반듯한 길도 구불구불한 길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구부러진 길들이 있었기에 사람을 만나고, 기다림도 배우고, 풍경을 품을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언제나 동화 속 이야기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조금 돌아가야 더 오래, 더 깊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그 따뜻한 방문에 답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글 제목은 도종환 시인의 시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에서 빌려왔습니다. 시인의 깊은 울림에 30년 월급쟁이의 삶을 이어온 저의 고백을 더해 새 글을 써 보았습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첫 출근하던 날, 다림질한 흰 셔츠가 유독 낯설던 아침. 나는 그 길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알지 못했습니다. 서툰 인사와 어색한 웃음 사이로 나는 하루씩 길을 배워갔습니다. 몇 번은 돌아서고 싶었고, 또 몇 번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그 길 위에 섰습니다.
승진이라는 이름의 반듯한 길도 있었고, 밀려나 비켜선 이름 없는 구부러진 길도 있었습니다. 잘 왔다고 믿었던 순간보다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의심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어느새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흘러 삼십 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지 않았어야 할 길도 있었고, 끝내 붙잡지 못한 길도 있었으며,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곧은 길이 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구부러진 길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고, 그날들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한 편의 시를 읊어 주셨던 어머님의 따뜻한 감사가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오늘 저를 찾아 주신 어머님의 그 따뜻한 온기처럼, 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우
한화생명 63WM센터장 |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한국보험신문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