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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산업 기틀 닦은 ‘라면의 아버지’ 전중윤

보험산업 기틀 닦은 ‘라면의 아버지’ 전중윤

보험산업 기틀 닦은 ‘라면의 아버지’ 전중윤

삼양식품이 최근 창업 초기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일명 ‘우지(쇠기름) 라면’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1963년 꿀꿀이죽을 먹던 배고픈 국민들에게 영양이 풍부한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창업주 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제민(濟民)’ 철학이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다.

대중에게는 이처럼 영원한 ‘라면의 아버지’로 각인된 그가 사실은 대한민국 생명보험 산업의 기틀을 다진 입지전적인 ‘보험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오늘날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을 설립하고 키워낸 주역이 바로 전 회장이다.

■ 척박한 땅에 ‘보험’ 씨앗을 뿌리다

전 회장과 보험의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세였던 지난 1935년 서울 용산우체국 서무과에서 일했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20세 약관(弱冠)에 체신국 보험과에 발령받으며 첫발을 디뎠다. 해방 후 체신부 등을 거쳐 경력을 이어갔고, 이후 공예품 무역회사인 한국공예수출조합 부이사장직을 역임하며 경영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경력을 눈여겨 본 고(故) 강의수 한국공예수출조합 이사장은 보험회사 설립을 제안했고, 전 회장은 1957년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을 공동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강의수 사장 및 전중윤 부사장 체제로 당시 서울 소공동 삼화빌딩의 작은 사무실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창업 초기 영업 환경은 열악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해 당장 끼니를 걱정하던 시절, 개인에게 미래를 위한 보험을 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때 전 회장이 주목한 것은 ‘단체보험’이었다. 그는 시선을 개인에서 조직으로 돌려 경찰관들의 퇴직보험 유치에 주력했고, 경찰관 4만명을 일괄 가입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그는 교통부 철도국, 한국전력, 해군 및 해병대 등과 잇따라 대규모 단체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러한 과감한 B2G(기업-정부 간 거래) 전략 덕분에 동방생명은 창업 초기 단숨에 국내 1위 보험사로 도약할 수 있었다. 오늘날 삼성생명의 시장 지위 뒤에는 전 회장이 설계했던 영업 전략이 숨 쉬고 있는 셈이다.

■ 일본 보험 시찰 길에서 만난 운명의 ‘라면’

동방생명을 업계 정상에 올려놓은 뒤, 전 회장은 재무부의 요청으로 경영난에 빠진 제일생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구원투수로 활약했다.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꾼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보험 연수’였다.

1959년 그는 일본 보험업계 시찰과 선진 경영 기법을 배우기 위해 도쿄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전 회장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복잡한 금융 시스템이 아니라,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사 먹던 따뜻한 ‘라면’이었다.

보험을 통해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했던 그는 당장 눈앞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더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귀국 후 남대문 시장에서 미군 잔반으로 만든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그는 보장된 길을 접고 식품 사업이라는 험난한 도전에 나섰다.

보험인 전중윤이 설계했던 것이 국민의 미래를 지키는 ‘안전장치(보험)’였다면, 기업가 전중윤이 만든 것은 국민의 현재를 지키는 ‘식량(라면)’이었다. 분야는 달랐지만, 사람을 살리고 돕는다는 정신만큼은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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