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유동화 제도, 소비자보호가 관건
지난달 말부터 본격 시행되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기대와 함께 실효성 논란도 낳고 있다. 사망해야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생전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혁신적이지만, 실제 수령액이 월 6만~13만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노후소득 보완책으로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작고 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면 오히려 혼란만 커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보험금 유동화의 성공은 제도 설계보다 소비자보호 장치가 얼마나 현실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생전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받는 제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종신보험을 주택연금처럼 유동화해 고령층의 생활자금을 지원하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자신의 사망보험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사망보험금을 미리 받는다’는 문구는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해약환급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유동화 비율이 높을수록 사망보험금이 크게 감소한다. 설명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신청했다가 뒤늦게 금액 감소를 확인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보험사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철회권과 취소권을 보장하고, 유동화 전 시뮬레이션을 제공하도록 했다. 하지만 고령층의 이해 수준을 고려할 때 단순히 제도를 안내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는 시뮬레이션 결과표를 보더라도 ‘내가 이 선택을 하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인지력이나 금융이해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는 숫자나 조건보다는 설명 과정에서의 인상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형식적인 설명의무를 넘어 계약자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소비자보호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신뢰의 기반이다. 유동화 계약 체결 시에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라 실제 연금 수령액, 잔존 사망보험금, 유동화 종료 후 재정상태 등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시각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신청 이후 판단을 번복할 수 있는 숙려기간을 확대하고, 일정 연령 이상 고령계약자에게는 필수적으로 대면상담을 거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지급금 수령일로부터 15일인 철회기간은 서류 작성이나 가족 상의에 시간이 걸리는 고령층에게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해 기간을 연장하거나 간소화된 철회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유족보장의 최소한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유동화가 늘어날수록 사망보험금이 줄어들게 되는데, 일정 금액이 남지 않는다면 종신보험의 본래 기능이 무너질 수 있다. 캐나다 등에서는 전체 사망보험금의 30~50%를 유족보장금으로 반드시 남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일정 비율 이상의 사망보험금은 유동화 대상에서 제외해 생전 편익과 사후 보장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고령층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책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금융상품의 혁신은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만 지속될 수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정부와 보험사는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는 소비자 불만과 민원 유형을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을 조기에 개선해야 한다. 특히 고령층 대상 교육, 상담, 비교안내 시스템을 강화해 소비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사망보험금 유동화의 성패는 상품의 구조가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에 달려 있다.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제도는 의미를 갖는다. 고령사회의 새로운 금융제도가 진정으로 복지적 혁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상품 출시보다 먼저 세심하고 체계적인 소비자보호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단순한 금융정책을 넘어 노후의 삶을 지탱하는 제도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