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사회 눈앞에, 금융ㆍ보험의 역할 확대 절실

치매사회 눈앞에, 금융ㆍ보험의 역할 확대 절실
우리나라의 치매 인구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인구수는 약 97만명이며, 향후 치매 발병 추세가 지속하면서 2050년에는 226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고령자를 포함할 경우 치매 인구는 2050년 569만명까지 증가하며, 향후 초고령사회에서 치매는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이 같은 치매 인구 급증에 따라 ‘치매머니’ 리스크, 금융사기 위험 등 구조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치매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금융 및 보험 부문의 역할 확대, 제도 혁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늘어나는 치매 인구, 사회적 문제로 확산
지난 20일 하나금융연구소에서 발간한 ‘치매 인구의 확대와 금융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인구 확대가 단순히 환자 개인의 건강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여러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사회 전체적으로는 치매 환자의 자산 동결 문제, 즉 ‘치매머니’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치매머니는 GDP의 6.4%인 154조원 규모로 집계된다. 정승희 연구위원은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는 경제 선순환 구조를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치매 위험에 대비하는 국내 금융 시스템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2024년 수입보험료 기준 치매·간병보험 시장 규모는 약 3조2000억원으로 전체 보험 시장의 1.3%에 불과하며,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가입률도 17.5%에 머문다.
고령층의 자산 동결을 방지할 수 있는 신탁 시장 역시 활성화가 더딘 상황이다. 5대 시중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9000억원 수준으로, 고령층 자산 총액이나 치매머니 규모를 감안하면 극히 제한적이다.
해외 주요국, 보험제도 및 돌봄 체계로 대응
반면 고령화 진전이 빠른 해외 주요국에서는 금융·보험사를 통한 치매 케어가 국내보다 활성화돼 있으며, 각국은 서로 다른 보험제도와 돌봄 체계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미국은 2025년 기준 치매 관련 사회경제적 비용이 약 78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의료·요양비 등 직접비용이 2300억 달러 수준이며, 나머지는 가족의 무급돌봄과 생산성 손실 등 간접비용이 차지한다.
금융·보험 측면에서 미국은 생명보험·연금계약에 장기요양(LTC) 보장 특약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상품이 보편화하고 있으며, IRC 1035 조항을 활용해 기존 연금·보험을 LTC보험으로 세금우대 전환(rollover)하는 방식이 금융상품에 적용되고 있다. 또 건강저축계좌(HSA)를 통해 의료·요양비 지출을 비과세로 처리할 수 있고, 지역사회 통합돌봄 프로그램 ‘PACE’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연계 재정모형으로 재가 중심 전인적 돌봄을 제공한다.
영국의 연간 치매 사회적 비용은 약 420억 파운드로, 2040년에는 900억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비는 국가보건서비스(NHS)가 대부분 부담하지만, 돌봄(social care) 비용은 개인과 가족이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영국은 ‘치매친화적 금융(Dementia-friendly Banking)’이 제도화 단계에 있으며, 보호자와 연계해 사용 한도 설정·알림 기능이 있는 시니어·케어 연결 카드가 활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진단 직후 최소 1년 동안의 포스트-진단 지원이 법정 표준으로 운영돼 금융 및 자산보호 상담까지 연계된 제도적 틀이 마련돼 있다.
호주는 2020~2021년 회계연도 기준 치매 관련 보건·요양 지출이 약 37억 호주달러(AUD)로 집계됐다. 이 중 요양시설(residential aged care) 비용 비중이 49%(18억AUD)로 높고, 재가 돌봄 서비스 확대가 과제로 꼽힌다. 민간 LTC보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정부 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돌봄 체계 측면에서 호주는 2017년 이후 은행권이 ‘치매친화 은행 서비스’를 공식 도입했다. 일부 은행은 취약고객 전담팀을 구성해 인출한도·자동이체 제한 등을 제공하며, 지속형 재산대리권(EPOA) 안내와 관리형 체크카드(managed debit card) 등의 보호장치가 확대 중이다. 또한 정부는 가족돌봄자 지원을 위한 Carer Payment·Carer Gateway(돌봄수당·돌봄지원포털) 프로그램을 통해 보호자 부담 경감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14년 기준 치매 사회적 비용이 약 14조5000억엔에 달했으며, 의료비보다 장기요양 및 비공식 돌봄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0년 도입된 전국민 장기요양보험(LTCI)은 65세 이상 전원이 급여 대상이며, 40세 이상이 보험료 납부의무를 진다.
또한 일본에서는 민간 치매보험에 혁신이 나타나고 있다. 2024년 에자이(Eisai)-라이프넷생명이 출시한 ‘be(치매보험 be)’는 경도인지장애(MCI) 단계부터 검진·치료·생활지원 서비스를 묶어 초기 개입가치를 높인 상품이다. 또한 성년후견·임의후견 제도가 활성화되어 치매 고령자의 금융·법률·자산관리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틀이 마련돼 있다.
신탁 및 보험 부문 ‘제도 개선’ 필요
이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금융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정 연구위원은 “향후 치매 시대에 대응해 정책당국의 신탁·보험 부문의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과 더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치매와 관련해 주로 신탁제도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이 논의되고 있는데, 최근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치매 환자의 자산관리를 위해 공공신탁을 도입하는 한편 민간신탁을 활성화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
정승희 연구위원은 “향후 공공신탁과 더불어 민간신탁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고령자 대상 원금보장형 신탁상품 허용, 일부 합동 운용 허용, 불특정 다수 대상 홍보 금지 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규제 요인으로 인해 일본 등 해외에 비해 요양사업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요양 수요를 근본적으로 충족하기 위해서 요양시설 소유 관련 규제 완화 등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사업 재정비 필요성도 언급됐다.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상품과 서비스를 니즈에 맞게 특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상담 조직 구축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금융이 치매 시대에 대한 리스크를 완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