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로 누군가의 통과의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젊은 남자들은 사람이 거의 살 수 없는 오지로 들어가 최대 6개월 동안 홀로 지내야 한다.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은 아이에게 어느 정도 힘이 생겼다고 판단되는 10대 초반 아이들을 북극지방으로 데려가 첫 사냥을 시킨다.
천막, 창, 기타 필수품을 들고 가서 끼니는 물론 사냥한 것으로 먹게 하며, 몇 주에 걸쳐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 가며 일각고래, 순록, 턱수염 바다 물범 등을 쓰러뜨려야 한다. 이 같은 귀중한 생존 기술들을 익혀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에 사는 마사이 부족에게도 통과의례가 있다. 젊은 마사이 남성은 혼자 사바나로 들어가 사자를 사냥해야 한다. 총도 활도 없다. 손에 들린 것은 창 하나뿐이다. 이런 단독 사냥은 어마어마한 양의 훈련을 요한다. 근력, 지구력, 불굴의 용기, 최고의 사냥 기술을 갖춰야 하며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마사이 청년이 도전에 성공하면 극강의 육체적 정신적 과제를 완수한 것이 인정되어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전사로 인정받는다.
오늘날 소위 ‘헬리콥터 양육’의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부모는 자녀가 가는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맹렬하게 치워버린다. 헬리콥터 양육이 시작된 직후 그 세대에 속한 대학생들 사이에 불안과 우울증이 80%가량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평생을 보호 속에 살아온 사람들에 비해 역경을 겪은 사람들이 정신적 안녕지수가 높고 정신적 육체적 증상을 겪는 일도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최근에 접했던 ‘편안함의 습격’은 꽃중년 일행이 한달간 알래스카 극지방에 체류하면서 겪은 극한의 야생 모험담을 풀어 낸 책이다. 살인적인 추위, 난폭한 북극곰, 굶주린 늑대무리, 피맛에 길든 오소리, 포효하며 흐르는 빙하… 알래스카 오지에서 죽는 방법이 수백만 가지라고 할 만큼 위험한 곳을 골랐다. 그러니 준비할 게 얼마나 많았겠는가.
방심을 절대 불허하는 지반에서 살아남기, 비상용 화덕 만들기, 임시 대피소 짓기, 지혈대 만들기, 각종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매듭 묶기 같은 것들이 필요했단다. 그들의 마지막 여정은 사냥이었다. 노련한 사냥꾼도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순록 사냥을 위해 사격 훈련에만 1년 가까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마사이족의 젊은 전사나 알래스카 이누이트족,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과는 사뭇 다른 통과의례를 거쳤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에도 대담한 모험과 패기, 도전을 통해 새로운 일상을 개척해 나가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셈이다.
기후변화 탓으로 아무리 폭염이 기승을 부리더라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안전한 울타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으며 배부른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내 주변 친구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가끔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세미나에 가곤 하는데 꼭 투자자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전공 학생들의 과제나 취업 기회를 염두에 두기도 한다. 함께 만나 얘길 나누다 보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서 미처 찾지 못하는 벤처 정신을 가까이서 엿볼 수 있다. 성공스토리보다는 실패담을 훨씬 많이 듣게 된다. 실패의 쓴맛을 되새기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것은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다.
최근 글로벌 마켓을 장악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의 창업자 가운데는 진취적인 기업인들이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세상을 창업과정에 녹여내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우주여행에 대한 환상, 가상세계의 현실화 등을 꿈꾸었고 전기자동차로 환경을 보호할 뿐 아니라 안전한 자율 주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구촌 어디에서건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도록 세상을 연결했다.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고도 이런 성공스토리를 쓸 수 있었을까?
알래스카 오지 탐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편안함의 습격을 서둘러 예방하고자 생활 속의 작은 도전을 시작했었다. 악기 하나쯤은 잘 다루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 첫 시도는 피아노 연주였다. 그러나 역시 장벽은 높았다. 일 년여 동안 뇌가 지시하는 손가락은 늘 태업하기 일쑤였고 혹시 관절염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편함이 엄습해 왔다.
게다가 동기부여가 희박해 발전 속도는 너무 지체되고 있었다. 그러다 마주한 드럼은 사지분리라는 커다란 허들이 존재하지만 피아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느덧 일년이 지나고 서툰 솜씨지만 정기 합주에 참여하고 있으며 연말에는 친구들 앞에서 펼쳐지는 비공식 연주 일정도 하나 잡혀 있다.
니체는 사람들은 흔히 기분 좋은 것, 편안한 것만 보고 듣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행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진짜 깨달음은 때로는 불편하고 원치 않는 답과 마주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통과의례를 거친 젊은이들이 부족들의 진정한 전사로 인정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알래스카로 순록사냥을 떠난 아저씨들의 도전과 모험에서도 확인된다.
진정한 성장은 익숙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도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게 됐다.
박치수
청주대학교 교수
前 교보생명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