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MI보험경영연구소 보험이슈 톡톡 다시 봐야 할 베트남 보험시장
지난 10여 년간 연평균 15% 이상 고속성장하며 ‘포스트 차이나’의 금융엔진으로 주목받던 베트남 보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2023년 거시경제 위축과 방카슈랑스 채널의 대규모 불완전판매 사태가 맞물리며 시장이 크게 흔들렸고, 일각에선 베트남 보험시장의 황금기가 끝난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러나 작금의 진통을 쇠퇴로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오판이다. 베트남 보험산업은 맹목적 양적 팽창기인 ‘1.0 시대’를 끝내고 질적 성숙기인 ‘2.0 시대’로 넘어가는 거대한 구조적 대전환의 변곡점, 즉 J-커브의 저점을 통과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2030 보험시장 발전전략’에서 향후 성장률 목표를 기존 15%에서 10%로 하향 조정한 것은 뼈를 깎는 체질 개선 의지로, 외형적 팽창보다 자본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를 담보한 내실 있는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시장 재편을 이끄는 핵심 동인은 규제, 신뢰, 디지털이다. 특히 규제의 허들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2023년 시행된 신(新)보험업법으로 자본금 요건이 대폭 강화됐고 감독 당국의 칼날도 매서워졌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RBC)의 단계적 도입, 강력한 데이터 현지화를 요구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 발효는 로컬 중소형 보험사에게 막대한 재무적 압박과 비용 상승을 강제하는 치명적 ‘데스밸리(Death Valley)’로 작용 중이다.
판매채널도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2024년 신용기관법 개정으로 은행 창구를 통한 보험판매가 엄격히 제한되며 기존 방카슈랑스 영업이 한계에 부딪혔다. 그 빈자리는 모모(MoMo), 그랩(Grab) 등 슈퍼 앱(Super App) 플랫폼과 제휴한 ‘임베디드 보험’과 MDRT 급 정예 조직으로 무장한 설계사 채널로 빠르게 대체되며 채널 권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현재 진출해 있는 한국계 보험사들이 분투 중이나, 기존의 천수답식 대면영업이나 소극적 틈새시장 공략만으로는 판도를 뒤집기 역부족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거친 규제의 파도와 채널 재편은 한국 보험사들에게 전례 없는 ‘M&A 골든타임’을 열어주고 있다. 자본 및 디지털 규제에 대응 가능한 상위 대형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재무가 취약한 로컬 중소형사들은 심각한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베트남 당국이 신규 인가(Green-field)에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만큼, 2026~2028년 사이 매물로 출회될 현지 중소형사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이 묘수다. 한국의 선진 자본과 IT 시스템을 이식하는 ‘구조조정 매수(Buy the Restructuring)’ 전략이야말로 가장 파괴력 있는 진입방안이다.
성공적 안착을 위해선 사업모델의 융합과 혁신이 절실하다. 베트남이 예상보다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사적연금 및 헬스케어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 만큼, 현지 슈퍼앱과 결합한 ‘초소액 임베디드 보험’으로 MZ세대와의 초기 접점을 확보하고 이를 공적 의료체계를 보완하는 ‘토털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는 K-인슈어테크 하이브리드 전략이 필수다.
더불어 실추된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의 보상안내 시스템이나 전자서명(e-KYC)을 선제 도입해 청약부터 지급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디지털 신뢰 마케팅’을 전개해야 한다.
베트남 보험산업 2.0 시대는 고도화된 규제를 돌파할 재무적 체력과 불신을 해소할 디지털 혁신 역량이 최우선 생존조건이다. 작금의 변곡점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 보험사들이 선제적 M&A와 현지 맞춤형 K-인슈어테크 전략을 결단력 있게 실행한다면, 베트남은 여전히 아세안 금융영토 확장의 가장 확실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다시 봐야 할 베트남 보험시장’, 진정한 옥석 가리기의 시간은 이미 시작됐다.
손성동 부소장
RMI보험경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