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0대 후반 고객님을 만났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태아보험을 점검받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해오셨다.
그런데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리셨다.
“많이 찾아봤는데 이대로 해주세요.”
살펴보니 유튜브에서 유명하다는 분이 제안한 설계에 인공지능(AI)이 추천한 특약들을 섞어놓은 자료였다. 서로 다른 논리로 짜인 두 가지 설계가 한 화면 안에 뒤섞여 있어, 무엇을 기준으로 골랐는지조차 파악이 안 됐다. 할 말을 잃고 한동안 멍하니 노트북 화면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사실 필자는 육아박람회를 바탕으로 영업해 온 터라 태아보험, 어린이보험은 자신 있는 분야다. 그래서 이대로 진행하시면 안 된다는 걸 어떻게 해서든 설명드리고 싶었다.
유튜브에 심의가 존재하지만 정확한 정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영상도 많다. 조회수를 위해 “이 특약은 무조건 넣어야 한다”, “이 상품은 절대 가입하면 안 된다”는 식의 단정하는 경우도 있다. 보험은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단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AI가 알려주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하는 데는 사람보다 정확할 수 있다. 그러나 리스크를 대비하는 보험 영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AI에게 아무리 물어도 눈앞의 고객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무엇을 걱정하는지까지 파악해 알려줄 수는 없다. 통계상 많은 사람이 선택한 특약이 지금 이 고객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고객의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과거 유산 경험이 있었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며, 현재도 임신 중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관리를 받고 있었다. 이런 병력과 체질은 태아보험이나 산모 관련 특약 가입 때 고지 대상이 될 수 있고, 상품에 따라 인수 조건도 달라진다.
어떤 상품은 조건부로만 가입이 가능하고, 어떤 상품은 아예 특정 특약을 제외하고 가입해야 했다. 유튜브도 AI도 이런 개인의 병력과 체질까지는 알 리가 없다. 그저 통계치로 작성된 제안서에는 이런 사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더욱이 자료에는 특약 이름과 가입금액만 있을 뿐, 갱신형인지 비갱신형인지, 납입 기간이 얼마인지는 빠져 있었다.
태아보험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장이 이어지는 상품이 많다. 지금 당장의 보험료만 보고 결정할 게 아니라, 10~20년 뒤 갱신 시점에 보험료가 어떻게 오르는지까지 따져봐야 하는데, 유튜브 영상도 AI 답변도 이런 장기적인 흐름까지는 짚어주지 못했다.
필자는 “가져오신 자료, 열심히 찾아보신 건 알겠어요. 그런데 이대로 진행하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처음엔 조금 당황하시는 눈치셨고, 나름 며칠을 들여 정리해 온 자료인데 서운하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왜 그런지 하나하나 짚어드렸다. 유산 이력과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로 산모 관련 특약은 조건부 가입이거나 일부 제외될 수 있다는 점, 이 부분을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청약 단계에서 거절되거나 나중에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갱신형과 비갱신형의 장기적인 보험료 차이를 순서대로 설명했다.
고지 항목을 정확히 확인한 뒤, 이 병력과 체질을 받아줄 수 있는 상품 위주로 다시 추려서 설계했다. 몇몇 회사에 심사 문의를 넣어 인수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도 거쳤다.
결국 처음 가져온 자료와는 완전히 다른 구성으로 가입했다. 상담이 끝난 후 퇴근길에 받은 메시지를 잊을 수 없었다. “저는 이게 다 맞는 줄 알았어요. 유튜버도 유명한 사람이고 AI도 사람보다 정확하니까 다 맞는 줄 알았네요.”
정보가 많아진 건 분명 좋은 일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오는 태도도 훌륭하다. 다만 유튜브에서 본 내용과 AI가 정리해 준 내용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나에게 맞는 설계가 되는 건 아니다.
서로 다른 전제와 논리로 만들어진 정보를 섞으면, 오히려 앞뒤가 안 맞는 설계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보험은 고객의 병력과 체질, 앞으로의 계획까지 반영해야 하는 영역이다. 유튜브도 AI도 일반론을 말해줄 뿐, 눈앞의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물어보고 확인하는 과정 없이는 전혀 알 수 없다.
AI 기술이나 유튜브 영상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활용하시되, 그것을 맹신하다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윤정원
메타리치 MRC사업단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