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법 설계사 관리, 입법보다 '데이터 검증망'이 절실
국회에서 보험사기 전력이 있는 보험설계사의 등록을 제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소위원회 단계에 회부된 지 6개월째지만, 아직 심사 안건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장의 시선은 ‘제재 수위’가 아니라 사기 전력자의 이직 반복을 걸러낼 공통 검증 시스템 부재에 쏠리고 있다.
보험설계사는 법인보험대리점(GA)에 위촉직 형태로 소속돼 활동하는 비중이 높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설계사 개인의 징계·사고 이력과 보험사기 연루 여부는 금융당국과 보험협회가 운영하는 ‘e-클린보험서비스’ 등 일부 공통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보험사·GA·수사 기관별로 제각각 관리되고 활용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그 결과 보험사기나 중대한 위규 전력이 있는 설계사가 다른 회사로 이동해 유사한 영업을 반복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했고, 정보 공백을 이용한 ‘이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금융당국 조사에서도 제기돼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보험사기로 적발된 설계사는 2017명으로, 2021년(1178명) 대비 71.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험사 피해액은 167억원에서 237억원으로 42% 늘었으며, 보험사가 사기 연루 설계사를 수사 의뢰한 건수 또한 2022년 726건에서 2024년 1197건으로 2년 만에 65% 급증했다.
일부 설계사들은 병원과 결탁하거나 SNS·메신저를 통한 브로커 역할을 하며 조직형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보험사기 전력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경우 청문 절차 없이 등록을 취소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후 유영하·강준현·박상혁 의원 등이 연달아 보완 발의를 이어갔다. 모집 질서를 저해하는 사기 전력자를 모집종사자 결격 사유에 포함시키는 방향에는 이견이 크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입법 명문화에는 동의하지만, 이를 실제 현장에서 작동시킬 데이터 검증 구조가 부재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업계는 법 개정보다 우선해야 할 과제로 ‘등록 전 자동 필터링 시스템’과 ‘보험사·GA·수사기관 간 정보 연계망 구축’을 꼽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GA·생명·손해보험사·금융위원회·수사기관이 공통으로 조회할 수 있는 ‘블랙리스트 설계사 ID 연계 시스템’ 구축 ▲설계사가 제출하는 경력 증빙자료를 자동으로 크롤링해 위·변조 여부를 가려내는 AI 기반 필터링 절차 도입 ▲사기 행위 가능성을 인공지능이 사전에 판독하는 디지털 등록 심사 시스템 ▲제재 이력의 무결성을 보장하기 위한 블록체인 해시값 기반 검증 구조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법학·범죄심리학계에서도 “보험사기 가담 설계사에 대한 가중처벌과 행정제재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험학계 관계자는 “보험업법상 보험사기 금지조항이 있으나 구체적 처벌 규정이 없어 불완전하다”며 “정부 입법으로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보험사기 살인사건에는 늘 설계사가 연루돼 있다”며 “가중처벌 등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법원은 의료·보험 등 전문인의 사기를 ‘특별가중인자’로 추가해 양형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양형기준은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입법을 통한 실질적 가중처벌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GA협회는 “등록 제한 시스템 구축은 협회가 아닌 보험협회와 금융감독원이 주도하고 있으며, 기술적·법적 사안이 얽혀 협회 차원의 직접 추진은 어렵다”며 “결격자 등록 차단 과제가 현안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것은 우려된다”고 전했다.
GA 업계 역시 판매전문회사 전환을 추진하며 모집 채널을 확대하고 있지만, ‘책임 검증 없는 확대’가 오히려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금감원이 105개 GA를 조사한 결과, 71곳이 제재 이력이 있는 설계사를 위촉했고 이 중 69곳은 별도의 사후관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내부에서는 “모집 채널이 커지는 속도에 맞춰 책임을 자동 검증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먼저”라며 “사기 전력자는 시장에 발을 들이기 전에 걸러내야 한다”는 의견이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