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2일부터 보험사가 대법원 판결 등을 반영해 보험금 심사기준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경우 변경 사실을 사전에 안내해야 한다. 소비자가 기존 보험금 지급 관행을 믿고 치료를 받은 뒤 부지급 통보를 받고서야 심사기준 변경 사실을 알게 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보험사의 보험금 심사기준 변경에 대한 소비자 안내의무와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행정지도를 추진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2월 금감원이 발표한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 추진 과제 중 하나다.
그동안 보험사는 대법원 판결 등을 반영해 보험금 심사기준을 바꾸더라도 소비자에게 사전에 안내할 의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존 보험금 지급 관행을 믿고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고 나서야 뒤늦게 보험사의 보험금 심사기준이 변경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 보험사의 소비자 안내의무, 대법원 판결 등 ‘중요한 심사기준 변경’ 시 적용
금감원 행정지도 내용에 따르면 보험사는 ▲대법원 판결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 ▲금융·보건당국의 유권해석·행정지도 등에 따라 보험금 심사기준을 변경하는 경우 소비자에게 사전 안내해야 하며, 금감원은 이를 ‘중요한 심사기준 변경’으로 규정했다. 다만 ‘소비자에게 유리한 심사기준 변경’이나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심사 강화’ 등 소비자 피해 우려가 낮은 심사기준 변경 사항은 안내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험사는 중요한 심사기준 변경이 적용되는 모든 보험계약의 피보험자에게 알림톡과 앱(App) 푸시(알람), 문자메시지(SMS) 등 2개 이상의 채널을 통해 개별 안내하고 홈페이지에도 해당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안내·공시 내용에는 심사기준 변경의 근거와 취지, 변경 내용, 적용 시점과 추가 문의를 위한 연락처 등이 포함돼야 한다.
변경된 심사기준은 소비자 안내일로부터 최소 3영업일이 지난 뒤 적용할 수 있다. 안내일 이전이나 새 심사기준 시행일 전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보험금 청구 시기와 관계없이 기존 기준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되며, 새 심사기준 시행일 이후 발생한 보험사고부터 변경 기준이 적용된다.
■ 보험사 내부통제 강화, 보험금 심사부서 단독 결정 막고 심의절차 표준화
보험사 내부통제도 강화된다. 보험사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모든 보험금 심사기준 변경에 대해 표준화된 심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경우란 기존에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었지만 심사기준 변경 후 부지급 또는 일부 지급으로 바뀔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필수 절차에는 보험금 심사, 소비자보호, 법무 담당 임원의 참여가 포함된다. 안건 상정 전에는 소비자보호, 법무, 보험금 심사부서의 사전 검토를 거쳐야 하며, 임원 이상이 최종 결재하고 준법감시인의 견제 기능도 반영해야 한다.
현재는 보험금 심사기준을 변경할 때 결정권한과 변경절차가 보험사별로 다르다. 일부 보험사는 심사부서 임원이나 부서장이 결정하고, 일부는 위원회 등을 거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변경절차 역시 심사부서 단독 결정, 소비자보호 부서 협의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개선안은 보험금 심사기준 변경 절차를 표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선안에 따라 보험사는 소비자보호, 법무, 보험금 심사부서의 사전 검토를 거친 뒤 관련 임원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심의해야 한다. 이후 임원 결재와 준법감시인 합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기준 변경 여부를 확정하고, 홈페이지 공시와 소비자 개별 안내를 통해 변경 내용을 알려야 한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의료행위를 이용하기 전에 심사기준 변경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 소비자 피해 발생 우려 상품에 적용… 연금·퇴직·보증보험 등 제외
이번 행정지도에 따른 소비자 안내의무는 오는 6월 22일부터 시행되며, 보험금 심사기준 변경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모든 보험상품에 적용된다.
다만 심사기준 변경에 따른 소비자 피해 우려가 낮은 연금보험, 퇴직보험, 보증보험, 재보험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민원과 분쟁이 가장 많은 실손의료보험은 보험업 감독업무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지난달 6일 우선 시행됐다.
금감원은 이번 제도 개선으로 보험금 청구 이후에야 변경된 심사기준을 알게 되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완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소비자가 의료행위 이용 전 보험금 지급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 보다 합리적인 의료·보험 의사결정이 가능해지고 보험금 분쟁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심사기준 변경 시 소비자 관점이 반영되고 표준화된 심의절차가 마련돼 보험금 심사의 객관성과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의료시장에서는 일부 브로커나 의료기관이 심사기준 변경 사실을 알면서도 고가 시술을 권유하는 행태를 예방하고,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