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분야도 본격적인 탈탄소화에 나선다. 제6차 의료혁신위원회가 5월 28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려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 개선과 의료기관 에너지 안보 확립 방안을 논의했다.
정기현 위원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크게 두 가지 안건이 다뤄졌다. 첫째는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 경과 보고였고, 둘째는 보건의료 분야 에너지 안보 확립 및 기후위기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대정부 권고안 심의였다. 회의는 유튜브(보건복지부 채널, KTV)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 개선과 관련해 위원회는 산하 전문위원회인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전문위원회에서 현재 논의 중인 중간 보고를 받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 전문위원회는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신생아학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 대책에 대한 자문을 이어왔다.
산모·신생아 진료는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생애 초기 건강과 임신·출산 전 과정에서 여성의 건강을 책임지는 핵심 영역이다. 그런데 최근 병원에서 고위험 산모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관련 의료 인프라 약화에 대한 우려와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저출생으로 분만 건수는 감소했지만 고령 산모와 다태아 비중 증가로 고위험 진료 부담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 출생아 수는 2019년 30만 3000명에서 2024년 23만 8000명으로 줄었지만, 고령 산모 비중은 같은 기간 33.4%에서 35.9%로, 다태아 비중은 4.6%에서 5.6%로 늘었다. 의료 인력과 분만 의료기관 등 인프라가 감소하고 지방 인구 감소로 의료기관의 안정적 운영이 더욱 어려워진 점도 지적됐다.
이에 위원회는 정부가 5월 26일에 발표한 '촘촘한 지역 연계와 신속한 전원으로 임산부와 신생아 생명 지킨다'는 내용을 포함해 고위험 산모·신생아 의료체계의 중장기 개편 방향을 마련하고 있다.
첫 번째 방안은 중증도에 따른 지역별 사전 대응체계를 구축해 반응적·사후적 대응에서 예방적·선제적 대응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산전 진찰은 거주지 인근 산부인과 병·의원 이용을 원칙으로 하되, 의료취약지의 경우 순회 진료를 활용하도록 제안했다. 임신 초·중반기 위험 선별을 통해 분만 기관을 사전에 선택·지정하고 고위험 산모는 별도로 등록해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또한 고위험 산모 진료를 위한 모자의료센터에서 응급환자 수용을 위한 예비병상을 상시 운영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전원전담팀과 연계한 이송·전원 지원과 24시간 전화 상담체계 구축도 논의됐다. 현재 중증모자의료센터 2개소, 권역모자의료센터 20개소, 지역모자의료센터 33개소가 운영 중이며, 전원전담팀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설치돼 상황의사 1명과 상황요원 5명, 의료원 내 산부인과 전문의가 업무를 지원한다.
의료 인프라 유지·강화를 위해 의료기관 단위의 포괄적 보상 등을 통해 국가가 운영을 책임지고 지원하되 응급 대기 병상 유지 등 공공적 의무를 부과하는 중장기적 개편 방안도 제시됐다.
두 번째 방안은 인력 유출을 방지하고 신규 유입을 늘리기 위한 인력 확보 방안이다. 단기적으로는 한정된 인력을 고려해 모자의료센터에 관련 전문인력을 집중해 진료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제안됐다. 지나친 세부 전문의 양성을 지양하기 위한 수련 과정 개편과 개원가 등으로 이탈한 전문의를 재유입시키기 위한 유인책도 논의됐다. 진료지원 간호사와 조산사 등 대체인력을 양성·활용하고 국립대병원에 관련 전공 교원을 추가 배정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임신 가능성을 높이면서 고위험 다태아 임신을 줄이기 위해 난임치료 시 단일배아 이식 진료 표준을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원회는 이날 제시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최종 권고안을 마련해 다음 7차 위원회(6월 25일 예정)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위원회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보건의료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기후재난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보건의료 분야 탈탄소화 실천방안 권고문(안)'을 심의했다.
이번 권고안은 2026년 2월 발생한 이란 사태와 미국-이란 간 군사적 충돌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타르의 LNG 공급 불가항력 선언 등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뒤흔든 심각한 수급 차질 정세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3.9%에 달하며, 원유 수입의 70.7%, LNG 수입의 약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매우 취약한 구조다. 의료기관은 24시간 가동되는 의료기기와 공조 설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 다소비 시설이어서 차질 없는 에너지 공급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위원회는 '의료기관 탈탄소화는 환경정책을 넘어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에너지 안보이자 환자 안전 정책'이라고 규정했다. 보건의료 분야는 의료기관 에너지 소비뿐 아니라 의약품·의료기기 제조, 환자·직원 교통, 급식 조달, 의료폐기물 처리 등 공급망 간접배출을 포함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2~4.4%를 차지하는 주요 배출원이다. 이는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기관이 막대한 탄소를 배출해 다시 질병을 유발한다'는 이른바 '보건의료의 역설'로 지적된다.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돼 지역 의료체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보건의료 분야 에너지 안보 달성은 기후 위기 대응이자 취약계층 보호라는 점도 명확히 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보건의료 분야의 기후위기 관리 및 에너지 안보 확립을 위해 3대 전략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의료기관이 수동적 객체가 아닌 정책 수립의 핵심 주체로 참여해 보건의료 기후대응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저탄소 의료가 양질의 의료라는 가치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둘째는 혁신적 인프라 구축으로,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 자립형 친환경 병원으로 전환하고 보건의료 디지털 전환 및 공급망 전체를 포괄하는 저탄소 혁신을 추진한다. 셋째는 포용적 회복력으로, 사회 보장 생태계 전반과 연계해 취약계층을 보호한다.
이러한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6대 핵심 이행과제도 도출됐다.
첫 번째 과제는 보건의료 분야 기후 대응 총괄 추진체계 구축 및 전담 재원 확보다. 보건복지부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내 전담 부서 및 분과를 신설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기후 대응을 위한 별도 기금을 신설하는 등 재정확보 방안을 제안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에 탄소중립 및 에너지 안보 대책을 포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두 번째 과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및 에너지 효율화 근거 기반 마련이다. 국내 보건의료 부문의 총 탄소 배출량을 과학적으로 추계하고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 가이드라인 마련을 제안했다. 근거 기반 연구 추진을 위해 데이터를 구축하고 학제 간 연구를 강화하며 친환경 병원 확산을 위한 지침을 마련해 전 의료기관에 배포할 것을 제시했다.
세 번째 과제는 자발적 참여 중심 에너지 효율화 및 현장 확산 도모다. 친환경 병원에 대한 세제 혜택, 부담금 감면 등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고 병원 건물 특화 그린 인증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의료기관 인증 등 각종 인증·평가에 기후 관련 사항을 추가하고 의료현장 종사자를 대상으로 기후환경 대응 관련 인식 전환 캠페인을 실시할 것을 제시했다.
네 번째 과제는 의료 인프라 에너지 절감 및 제도개선이다. 신재생 에너지 전환 등 의료기관의 에너지 자립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의료기기·소모품의 재제조 등 의료 공급망 차원의 탄소 절감 노력을 제시했다. 비상전원 시스템의 신재생에너지 활용 등 보건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한 법령 개정도 제안했다.
다섯 번째 과제는 임상현장 저탄소 혁신 및 보건의료 기후대응 기반 역량 강화다. 종이 서류 발급을 억제해 탄소배출을 최소화하고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에 기후보건 관련 기능을 추가해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의학 교육과 직역별 보수 교육에 기후 의학 관련 내용을 추가할 것도 제시했다.
여섯 번째 과제는 정의로운 전환 원칙에 따른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 강화다. 기후 조기경보 및 예방 지원-질병 발생 시 지원-지수형 기후보험으로 구성된 3층 안전망 구조 도입을 제시했다. 상급종합병원부터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까지 단계적으로 환경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기반으로 의료현장의 전환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정기현 의료혁신위원장은 "모자의료와 의료기관의 탈탄소화라는 시의성 높은 주제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권고안을 마련한 만큼 정부가 이를 적극 수용해 조속히 정책화에 착수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논의된 안건에 대해 의견이 있거나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의료혁신을 위한 국민소통광장'(https://hcinnovation.co.kr)을 통해 언제든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국민소통광장은 2026년 3월 24일부터 연말까지 운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