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기본권을 기반으로 한 기초금융 체계 구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기초금융 재원을 금융권 출연금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재원 조달 방식과 공공·민간 금융시장과의 역할이 향후 주요 검토 과제로 꼽힌다.
신용회복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금융기본권 연구단’ 출범식을 열고 ‘국민기초금융보장법’ 제정 구상을 공개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금융 서비스를 보편적 권리로 격상해 차별 없이 이용할 토대를 마련한다는 게 핵심이다. 연구단은 금융 접근권·생존권·재기권·자립권·자산형성권 등 5대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은 금융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보편적 권리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기존 포용금융이 지원 중심이었다면, 금융기본권은 채무조정부터 보험·대출·저축까지 생애주기별 금융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핵심은 기초상담·채무조정, 기초보험, 기초대출, 기초저축으로 구성된 ‘4대 기초금융’이다. 기초보험은 공공 실손보험 형태가, 기초대출은 하위 30%를 대상으로 최대 1000만원의 저금리 장기대출이 검토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재원은 금융사로부터 조달한다는 구상이다.
■ 금융권 출연금 활용 구상에 업계는 ‘신중’
금융·보험업계는 금융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재기를 지원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 도입 과정에서 재원 출연에 있어 금융회사의 부담 수준과 지속가능성, 기존 제도와의 역할 분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책 목표와 지원 대상을 정하고 재원은 민간에 의존하는 구조가 될 경우 사실상 목적세나 준조세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책임과 자발적인 사회공헌은 필요하지만 법률에 따른 상시적 재원 부담은 별개의 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 정책이라면 정부 역시 재정과 책임을 함께 분담해야 하며, 금융회사의 책임 범위와 수혜자의 상환 책임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추가 출연금 부담이 장기적으로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자본 여력, 신규 신용공급 능력에 영향을 미쳐 결국 일반 금융소비자와 주주에게 비용이 간접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아울러 대출 공급 자체가 자활이나 재기를 의미하지 않는 만큼 단순한 공급 규모 확대보다 실질적인 재기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을 비쳤다. 소득과 현금흐름이 회복되지 않은 차주에게 추가 대출만 제공할 경우 채무 만기를 연장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상환 능력과 소득 회복 가능성, 채무조정 이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대출과 채무조정, 복지·고용 연계를 구분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책 성과가 ‘얼마나 많이 공급했는가’로 평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공급액 경쟁이 시작되면 기관과 금융회사가 지원의 질이나 상환 가능성보다 목표액 달성에 집중해 부실 확대와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공급 규모보다 실질적인 자활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체계 구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초보험 도입 시 공공·민간 역할 분담 관건
보험업계는 기초보험 도입 과정에서 공공 영역과 민영보험 간 역할 분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초보험 개념 자체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민영보험과 유사한 보장 구조로 설계될 경우 기존 실손보험과 중복 보장 가능성이 있다 보니, 관계 설정이나 보장 범위 조정 등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 단체보험이나 지자체 시민안전보험처럼 공공 목적의 보험은 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기반으로 운영돼 왔다”며 “기초보험이 민간 금융회사의 출연금을 재원으로 추진될 경우 재원 조성 방식과 사업 운영 주체, 책임 분담 구조를 보다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