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눈 중동 긴장 장기화 신호, 관건은 ‘금융의 속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추가 타격과 보복이 이어지면서, 중동을 둘러싼 긴장은 군사 충돌을 넘어 해상 물류의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1일 걸프 해역에서 유조선 최소 3척이 피해를 입고 선원 1명이 숨졌으며, 호르무즈 해협 주변에는 200척이 넘는 선박이 닻을 내렸다. 세계 원유 소비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길목이 흔들리자 중동-중국 노선 초대형 유조선(VLCC) 운임도 하루 42만 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
해상 운임과 전쟁위험 보험료 급등은 유가·환율 변동성을 키우며 국내 금융시장에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일제히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관계기관 합동 금융시장 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의 13조3000억원 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중동 상황에 영향을 받은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4일에는 긴급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를 다시 열고, 과도한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100조원+α 시장안정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하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도 3일 ‘중동 상황 비상대응 TF’를 꾸리고 24시간 대응체계에 돌입했다. 해외사무소와 현지법인 핫라인을 가동하고, 외화 유동성과 자금시장 흐름, 불공정거래 가능성까지 들여다보겠다고 전했다.
금융권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5대 금융지주는 잇따라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했는데, KB금융은 환율·금리·유가를 실시간 점검하며 피해기업 지원에 나섰고, 신한금융은 그룹위기관리협의회를 통해 대응 체계를 점검했다. 하나금융은 12조원 규모 긴급 금융지원과 함께 현지 교민 지원까지 검토하고 있으며, 우리금융과 NH농협금융도 비상 대응체계와 익스포저 점검에 나섰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중동지역에 나가 있는 우리은행 임직원 안전이 중요하다”며 “상황에 따라 직원 가족들의 조기 귀국 등 기수립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에 따라 차질 없이 지원하라”고 주문했다. 또 “시장금리 상승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음에 따라 각 계열사별로 치밀한 리스크 점검체계를 구축할 것”을 당부했다.
위기 상황에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말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과 기업이 체감할 장치를 먼저 꺼내 든 셈이다.
전쟁과 분쟁의 충격은 현장의 거래처와 수출대금, 원자재 비용, 환율 부담으로 스며든다. 위기 국면에서 금융의 본업은 시장을 해설하는 일이 아니라, 불안이 자금경색으로 번지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붙드는 일이다.
특히 중동 변수는 유가와 물류, 환율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소기업과 협력업체에는 대기업보다 훨씬 더 빠르고 무겁게 체감된다. 이에 당국과 금융권은 ‘얼마나 지원해주는가’뿐 아니라 ‘지원을 얼마나 빨리 시행하는가’를 보여줬다.
이제는 ‘앞으로는 어떻게 대응해 갈 것인가’가 더 중요해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은) 그보다 더 오래 (전쟁을) 지속할 능력을 갖고 있다”며 사태 장기화를 시사했다.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가짜 정보와 과장된 전망은 자금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당국과 금융권이 확인된 사실과 리스크 수준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금융권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며 당국 조치에 맞춰 대응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단기성 대책에 그치지 않도록, 상황별 단계 대응과 사후 점검을 어떻게 체계화할지 ‘장기전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