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보험상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상품을 출시하거나 개정할 때마다 담당자는 위험률, 해약률, 계산식 등 산출 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상품 수가 늘어날수록 업무 처리 시간과 오류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필자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이 같은 문제를 시스템으로 풀어낸 사례다. 대상은 판매 중인 보험 약 1500종과 판매가 중단된 갱신보험 약 1000종으로, 전체 약 4만8000개 보험코드가 해당됐다. 기존 산출 데이터를 전수 검증해 새 시스템으로 옮기는 작업에만 10개월이 걸렸다.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 요율 계산이 아니라 요율산출 전체 업무의 흐름을 설계한다”는 것이었다. 상품정보를 통합하고, 요율을 산출하고, 결과를 검증한 뒤 관련 문서를 생성하고 기존 핵심업무시스템과 연계하는 다섯 단계를 하나로 연결해야 했다.
이를 위해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상품정보와 기초율, 산출식을 표준화해 한 곳에서 관리한다. 둘째, 일괄 처리 및 복사 기능을 부가 기능이 아닌 핵심 기능으로 설계한다. 셋째, 여러 상품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 동시에 산출한다. 넷째, 검증 데이터를 활용해 전건 값 검증 및 결과를 요약한다는 것이었다.
설계 초반에는 시스템의 역할을 요율 산출과 검증까지로 한정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하지만 검증 이후 결과를 기존 업무 시스템으로 전달하고 담당자에게 알리며 산출방법서를 작성하는 과정까지가 하나의 업무 흐름이었다. 이 부분을 시스템 안에 두지 않으면 사람의 수작업이 다시 필요하다. 그래서 결과 전송과 알림, 문서 생성까지 시스템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정보 입력부터 문서 작성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개별·건별 수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단위의 대량 산출·병렬 검증 방식으로 전환했다. 개별 신상품의 산출 업무처리 시간은 평균 400% 이상 단축됐고, 개정 등의 일괄 작업에는 더 큰 개선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당사가 지난해 출시한 요율산출 자동화 솔루션 ‘이노파스’(InnoPAS, Pricing Automation System)로 구축한 첫 사례다. 보험업계에서도 선도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크게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 ‘업무 과정 전체’를 그려야 시스템의 경계가 제대로 정해진다. 요율 산출만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범위를 좁혔다면 개발은 더 수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정보관리·검증 같은 산출 전후 업무는 여전히 사람의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했을 것이다. 업무 담당자가 실제로 밟는 전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려보고 나서야 시스템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둘째, ‘대량 처리’는 인프라가 아니라 기능 설계의 문제다.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 자체는 인프라와 아키텍처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일괄 등록·복사처럼 담당자가 실제로 대량의 항목을 다루는 화면과 조작 방식을 잘 설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런 기능들을 후순위로 미뤘다면, 시스템은 빨라도 업무는 여전히 느린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외에도 기존 데이터와의 정합성 검증에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든다는 점을 확인했다. 새 시스템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 산출 데이터와 새 시스템 결과를 전수 비교하는 과정이 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실제 수행과정에서 깨닫게 됐다.
데이터 중심(Data Driven)의 보험요율 산출 자동화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여러 보험사에서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보험요율 산출 자동화는 계산을 시스템이 대신해 주는 작업이 아니었다. 정보를 표준화해 통합하고, 산출하고, 검증하고, 결과를 다음 업무로 넘기기까지의 흐름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비슷한 과제를 두고 고민하는 보험사 현업 및 IT 실무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짧은 글에 모든 경험을 담을 수는 없지만 이번 사례가 업무의 자동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유승영
이노에이엑스 금융AX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