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작물재해보험, 기후위기 앞에 흔들리는 ‘신뢰’

농작물재해보험, 기후위기 앞에 흔들리는 ‘신뢰’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농업현장에서 농작물재해보험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수확 직전 피해가 커졌는데도 보상은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으며, 벼와 콩을 재배하는 농가들은 “재해가 반복될수록 보상 기준이 낮아지는 구조적 역설”에 불만을 토로한다.
충북에서 30년 넘게 벼농사를 지은 한 농민은 올해 유난히 길어진 가을비로 수확량이 예년보다 30% 줄었지만, 지급받은 재해보험금은 실제 피해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최근 몇 년의 평균 수확량을 기준으로 보상액이 산정되다 보니, 과거 재해로 이미 떨어진 기준수확량이 다시 평균에 반영돼 보상 자체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긴 것이다.
콩 재배 농가의 불만은 더 깊다. 병해충 피해가 급증했지만 병충해는 보험 보장 대상이 아니어서 실질적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확량만 기준으로 삼는 피해율 산정 방식 때문에 품질이 떨어져도 피해율은 낮게 계산된다. “병이 든 콩은 수매조차 어려운데도 수확량에 포함된다”는 현장 반응이 쏟아진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2001년 도입 이후 정부 보조를 바탕으로 NH농협손해보험이 운영하고 있다. 기본 구조는 최근 5년간의 평균 수확량을 기준수확량으로 삼고, 실제 수확량 감소율로 피해율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후재해가 매년 반복되면서 기준수확량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피해율이 왜곡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병충해·품질 저하·출현 실패 등 기후와 직결된 피해가 약관상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재해는 늘었는데 보험은 그대로”라는 체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업계 측은 “보상 기준이 해마다 단순히 떨어지는 구조는 아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NH농협손해보험의 평년수확량 제도개편을 따져보면, 수확량 급락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가 수년간 단계적으로 보완돼 왔다.
첫째는 기준수확량 하한선(플로어) 강화이다. 농협은 2012년 이후 기준수확량 산출 시 무사고 농지의 수확량 인정폭을 상향 조정했고, 2014년·2015년·2019년 개편을 거치면서 평년수확량 하락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규정(하한선·절사 규칙)이 반복적으로 보완됐다.
즉, 극단적인 피해로 ‘0’ 수준의 수확량이 발생하더라도 그 수치를 평균에 그대로 넣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는 한두 해의 극단적 재해가 전체 기준을 비정상적으로 깎아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다.
둘째는 지역 평균치 보정 시스템의 공식 반영이다. 평년수확량 산정 시 조사수확량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 시·군 단위 평균 생산량을 함께 반영하는 보정 규칙이 운영되고 있으며, 2015년·2019년에는 ‘직전 5년 중 최저수확량 1회를 제외’하는 절사 조정 규칙도 포함됐다. 이는 극단적 기후해가 기준치를 비정상적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업계 관계자는 “기준수확량 산정은 단순한 평균 계산이 아니라 ‘감소분은 완화하고, 증가분은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완충 구조로 설계돼 있다”며 “농민들의 손실 체감이 과도하게 커지지 않도록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균형 있게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기존 농작물재해보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수입안정보험’이다. 수입안정보험은 수확량 감소와 가격 하락을 동시에 고려해 총수입 감소분을 보상하는 구조로, 기후재해로 평년수확량이 낮아지더라도 가격까지 떨어지는 상황을 함께 반영하기 때문에 농가의 실질 피해를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평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존 농작물재해보험은 수확량 감소만으로 피해를 산정하다 보니 농민과 보험사 간 이견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며 “실제 농가 피해는 ‘수확량 × 가격’ 두 요소가 함께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 하락까지 반영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올해부터 수입안정보험을 본격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완충장치가 여러 단계에 걸쳐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도가 낮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장치들이 농가의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수확량 하한선, 절사 규칙, 지역평균 보정 등 제도적 버퍼가 갖춰져 있음에도, 적용 기준과 산정 방식이 약관 부속서나 설명 자료만으로는 농민들에게 잘 와닿지 않아 농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농민들이 기대하는 보장 범위와 보험이 실제로 보장하는 범위가 서로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은 어디까지나 실제 발생한 손실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구조인데, 과거 풍년 수준을 기준으로 회복되길 기대하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완충장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부터 농가가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형태로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정부가 농민들, 업계 관계자와 충분히 소통하면서 기후위기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한 ‘체감형 보험’으로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완충장치가 실제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설명 자료가 부족해 현장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농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명하고, 관련 정보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