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로 천원샵의 반란, 롱테일의 희망
최근 다이소의 강남빌딩 매입이 화제다. 매입가는 3500억원에 이른다고 알려졌으며, 이는 초등학교 앞 작은 가게가 도심 한복판, 그것도 부의 상징인 강남의 일류 백화점에 초대형 점포를 내고 입성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이소의 성공스토리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그 정도 규모로 가파르게 성장할 줄 사람들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값싼 물건을 진열해 연간 수백억의 순익을 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며, 이 정도면 경영대학원(MBA) 사례 연구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과거의 경제학이 상위 20%의 히트 상품에 집중하는 ‘파레토의 법칙’에 매몰되어 있었다면, 다이소의 강남 입성은 하위 80%의 ‘꼬리’들이 모여 거대한 ‘몸통’을 압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 사건이다. 이러한 ‘롱테일의 반란’은 이제 디지털과 인공지능(AI)이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무한한 진열장을 가진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AI 알고리즘은 파편화된 개인의 취향을 정교하게 찾아내고, 과거에는 버려졌던 사소한 데이터와 수요를 수익성 있는 시장으로 탈바꿈시킨다. 시장의 지배력은 거대 자본을 가진 ‘헤드’에서, 디지털과 AI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증폭시킬 줄 아는 영리한 ‘꼬리’들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존의 법칙이며, 또 다른 ‘다이소’들도 많다.
과거의 패션 시장이 대기업 중심(Head)이었던 데 반해 무신사는 수천개의 작은 브랜드(Tail)를 모아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었다. ‘오늘의집’ 또한 사소한 방 사진이라는 데이터를 커머스와 연결해 유니콘이 됐다. 음원회사 스포티파이는 과거 레코드샵에서 팔리지 않던 인디뮤지션들의 곡을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과 결합시켜 거대한 스트리밍 매출을 만들어 낸다.
보험 역시 거대 담보 중심에서 일상의 미세한 위험을 케어하는 롱테일 마켓으로 진화 중이며, 이쯤 되면 우리가 알고 있는 20대 80의 파레토의 법칙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기존 오프라인 경제에서는 매장 진열대의 한계로 인해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이었지만, 디지털시대를 맞아 진열대는 무한대로 펼쳐지게 되었다. AI 시대에 진입한 지금으로서는 속도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롱테일 경제학의 달라진 현주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긴 꼬리에 머물러 있을 경우 상위 20%에 진입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만큼 어려웠지만, 이제 그 꼬리에서 역사적인 반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가까이서 그러한 장면을 수시로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강남빌딩을 매입한 다이소처럼 말이다.
전문가들은 긴꼬리에서 머리쪽으로 이동하는 기회가 확대되는 비결로 누구나 제품이나 콘텐츠를 만들기 쉬워진 ‘생산의 민주화’, 인터넷과 물류 혁신으로 누구나 판매가 가능하게 된 ‘유통의 민주화’, AI와 알고리즘이 꼬리에 숨은 상품을 딱 맞는 주인에게 찾아주는 ‘검색 비용의 감소’에서 찾는다. 소비자에게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큐레이터가 되고, 소상공인에게는 가장 적합한 고객을 찾아주는 정밀 타격기가 되기 때문이다.
헤드의 몰락, 꼬리의 반란으로 비견되는 다이소의 강남 입성은 과거엔 자본과 권력을 가진 ‘헤드(상위20%)’가 시장을 지배했다면, 디지털을 넘어 이제 AI가 꼬리 부분에 흩어져 있던 개인과 작은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AI가 3만개의 다이소 물품 중 무엇이 내일 강남역 근처에서 많이 팔릴지 예측하듯, 작은 기업도 AI 데이터 분석으로 틈새(Niche)를 공략해 강남 한복판에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유튜버나 크리에이터는 공중파(헤드)가 아니어도 나만의 ‘꼬리’ 취향을 가진 팬 1000명만 있으면 많은 연봉을 받는 1인 기업이 될 수 있다.
전통적인 기업가(Entrepreneur)에 견주어 1인 기업을 의미하는 솔로프리너(Solopreneur)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AI를 비서로 쓰는 1인 기업가가 과거 수십 명의 직원을 둔 기업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
캠퍼스에서는 어느덧 설렘 가득한 새학기가 시작됐다. 첫 시간은 롱테일 경제학으로 포문을 열었는데, 디지털 세대이자 AI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세상의 변화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AI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뇌를 확장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사실, 그 확장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누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고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그치는 실증적 사례를 얘기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강남 빌딩의 주인은 자본가가 아니라, 롱테일의 끝단에서 자신의 취향과 가치를 AI로 증폭시킬 줄 아는 모든 개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이소 사례에서 분명히 확인하고 있다.
박치수
청주대학교 교수
前 교보생명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