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업계의 구조개편 바람이 대산에 이어 여수로 확대된다. 산업통상부는 여천엔씨씨,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디엘케미칼 등 4개사가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지난 7월 20일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대산 1호 프로젝트(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에 이은 두 번째 사례다.
이번 여수 1호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업 간 자발적인 통합을 통해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고부가·친환경 분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화솔루션과 디엘케미칼은 각각 보유 중인 폴리에틸렌(PE), 접착·도료용 수지 등 다운스트림(하위 생산 단계) 사업 부문을 현물출자한다. 롯데케미칼은 여수 공장의 나프타분해시설(NCC)과 PE·PP 등 기초소재 사업을 물적분할해 여천엔씨씨와 통합, 신설통합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여천엔씨씨의 주주사인 한화솔루션과 디엘케미칼은 총 5,450억원(각 2,725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기존 부채를 상환한다. 또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배관 및 인프라 구축, 고부가 전환 등을 위해 총 2,532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향후 기업 간 합병 관련 계약 체결, 이사회 승인, 기업분할 및 합병 절차 등을 거쳐 신설통합법인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사업재편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 합동으로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지원 내용은 크게 금융·세제, 원가 절감 및 제도 합리화, 지역경제 및 고용 안정, 기술개발 등 4개 분야로 나뉜다.
먼저 금융 지원 분야에서는 채권금융기관이 설비 통합 및 고부가 전환을 위해 4,5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협약채무에 대한 상환을 유예해준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입보험료 할인(최대 30%)과 보증한도 우대(최대 2배) 등 2,000억원 규모의 수입보험 지원을 확대한다. 산업은행은 추후 채권금융기관과 협의를 거쳐 8월 중 지원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세제 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기업 분할·합병과 자산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인세와 지방세 부담이 크게 완화된다. 법인세의 경우 자산 매각 시 과세이연 기간이 기존 4년 거치 3년 분할납부에서 5년 거치 5년 분할납부로 확대된다. 가속상각제도를 활용한 비용 조기 인식과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도 80%에서 100%로 늘어난다. 지방세는 취득세와 등록면허세가 75~100% 감면된다.
원가 절감을 위해 내년까지 수입 나프타(석유화학 기초 원료) 및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무관세(0%)가 적용된다. 사업재편 기간 동안 열 공급구역 중복금지 규정도 한시적으로 완화된다. 제도 합리화 측면에서는 배관 및 파이프랙 등 인프라 임대비용을 지원하고, 인허가·규제를 개선한다. 특히 사업재편 이전에 취득한 인·허가 사항을 다시 취득해야 할 경우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주요 인·허가 절차가 합리화된다.
지역경제와 고용 안정을 위한 지원도 포함됐다. 고용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기간 이후에도 고용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고용위기지역 지정 여부를 검토한다.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요건이 완화되고, 사업재편 기업이 재직자의 직무 심화 및 전환 훈련을 실시할 경우 훈련비 일부가 보조된다. 지역투자촉진보조금 지원한도도 내년 2월 상향된다.
산업 고도화를 위해 사업재편 승인 기업이 수요를 제출한 R&D 과제 중 중장기 필수 유망 과제(3개 과제, 총 248억원)는 올해부터 신속 지원된다. 중장기 고부가·친환경 전환을 위한 대규모 R&D도 추진된다. 조세특례제한법상 신성장·원천기술 지정을 통해 기업들의 고부가·친환경 분야 신규 투자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재편을 통해 정부는 세 가지 주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첫째, 공급과잉 완화다. 사업재편 기간(3년) 동안 에틸렌 생산 설비 2개소(139만톤 규모, 여천엔씨씨의 NCC)와 저부가 범용제품 생산 설비 가동이 중단된다. 이를 통해 생산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고부가·친환경 전환이다. 신설통합법인은 의료용 LDPE, 의료·식품·위생 등 점접착제용 POE 등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사업을 전환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 주주사인 롯데케미칼, 디엘케미칼, 한화솔루션은 각각 고부가·친환경 첨단 화학 산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셋째, 재무구조 개선이다. 통합 운영에 따른 효율성 제고와 자구노력을 통해 그간 적자를 기록한 영업이익은 사업재편 기간 이후 흑자로 전환되고, 부채비율도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앞으로 기업 간 분할·합병 등 사업재편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 사항을 신속히 해결할 방침이다. 사업재편 이후에도 보건·의료·산업 분야 필수 생산품목의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구조개편을 추진한다. 또한 중동전쟁을 겪으며 중요성이 부각된 석유화학 공급망 안정화 방안과 함께 고부가·친환경 전환, 지역경제·고용 지원 등 화학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올해 하반기 중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산업부는 사업재편 승인 직후 4개사 대표가 참여하는 간담회를 열어 지원 패키지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원활한 사업재편 이행을 위한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이번 여수 1호 프로젝트 승인은 국내 최대 화학 산단인 여수에서도 사업재편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선제적·자율적 구조개편이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은 산업정책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 차관은 또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임승차 없이 모든 산단이 참여하는 사업재편이 필요하다”며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 지역 사업재편 논의도 신속하게 추진해 우리 석유화학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