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규모가 커지면서 보험사들이 위성 데이터를 새로운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주목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고 발생 후 보상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위성 정보를 활용해 재해를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분위기다. 우주 산업 자체도 단순 위성 발사·제조 중심에서 데이터와 응용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보험업계와의 접점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해외 보험사들은 이미 위성 영상을 실무에 적용하고 있다. 일본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은 핀란드 아이싸이(ICEYE)와 제휴해 재해 발생 직후 피해 지역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신속하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체계를 갖췄다. 글로벌 보험사 악사(AXA)와 에이온(AON)도 기후 리스크 증가에 대응해 위성 데이터로 피해 범위를 산정하고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데 활용 중이다. 지난 2월 AXA는 지구관측 위성 기업 플래닛 랩스(Planet Labs)와 협약을 맺고 고해상도 위성 이미지와 AI 분석을 결합해 홍수, 산불, 허리케인 같은 재해를 거의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고객에게 사전에 경보를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농업 부문이 위성 데이터 활용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농작물재해보험은 손해평가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피해 규모를 판단하고 있으나, 이상기후로 피해가 대규모화하면서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지는 실정이다. 농협미래전략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위성 영상을 손해평가에 접목하면 자동화된 평가와 신속한 보험금 선지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농업정책보험금융원과 국립농업과학원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정책보험 데이터와 위성 관측 기술을 연계해 재해 대응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내 보험사들이 위성 데이터를 실질적인 업무에 도입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 차원에서 위성 데이터나 AI 기술 도입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나 추진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 기관들을 중심으로 기초 연구가 진행 중인 단계라는 설명이다. 보험연구원 강윤지 연구위원은 위성 탐사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기술적 난제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기술 발전 가능성은 높지만, 규제와 인프라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보험의 본질적 역할이 단순한 사후 보상에서 벗어나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위성 데이터와 AI 분석 기술의 접목은 장기적으로 보험 산업의 비용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더 신속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기술 상용화와 제도 정비가 병행될 때야 비로소 시장에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