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운데 시니어케어 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고급 실버타운과 저소득층용 공공임대주택 사이의 간극을 메울 중산층 대상 시니어주택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험업계 역시 요양·간병·건강관리 사업 확대를 미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 정부와 민간 양측에서 시니어케어 생태계 조성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다만 보험사를 비롯한 민간 자본이 실질적으로 시니어케어 서비스를 확대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행 규제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인복지법에 따른 부지 소유 의무와 보험업계 특유의 자본건전성 규제는 사업 확장을 가로막는 이중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대응과 돌봄 인프라 확충이라는 정책 방향과 달리, 실제 민간 투자 환경은 여전히 경직돼 있어 대규모 자본 유입을 이끌어 낼 제도적 합리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1051만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했다. 고령 인구 비중은 지속해서 상승해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 역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24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를 보면 2024년 말 기준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는 약 116만5000명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는 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초기와 비교해 수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시니어케어 시장의 경제적 규모 역시 팽창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케어 시장 규모는 2018년 8조원에서 2022년 14조5000억원으로 확대됐다. 같은 기간 관련 시설 및 서비스 이용자 수는 103만6000명에서 167만3000명으로 연평균 12.7%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들은 인구 구조 전환에 따라 재가 돌봄과 시니어 주거 수요가 시장 성장을 구조적으로 견인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가족 구조 변화는 시장의 질적 전환을 요구하는 핵심 배경이다. 고령층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 데다 자녀 세대의 직접 돌봄 여력은 감소하면서, 주거와 의료·요양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합형 돌봄 모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산층 고령인구를 겨냥한 주거 공급 제도화에 착수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한국주택협회 및 주요 건설사들과 간담회를 열어 시니어 주거 공급 과정의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새로운 형태의 중산층 대상 시니어주택 모델 도입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보증금과 월 이용료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민간 고급 실버타운과 입주 자격이 제한적인 국토교통부 소관 저소득층용 고령자복지주택만으로는 다수의 중산층 고령인구가 직면한 주거 및 돌봄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고령자돌봄주택 특별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고령자돌봄주택 개념을 새롭게 제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돌봄 서비스를 사업자가 직접 제공하거나 인근 의료기관 및 요양기관과 연계해 운영하는 구조를 담고 있다. 안정적인 중산층 대상 주거 공급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는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서비스 제공 고령자용 주택(サ高住·사코주)’ 모델과 유사한 접근 방식이다. 사코주는 안부 확인과 생활 상담을 법정 필수 서비스로 규정하며, 추가적인 요양이나 간병이 필요한 경우 외부의 재가요양 서비스를 선택적으로 연계하는 구조를 취한다. 이처럼 거주비와 서비스 이용료를 분리해 비용 부담을 낮춘 사코주는 실용적인 고령자 주거 모델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가 검토 중인 고령자돌봄주택도 이와 유사하게 식사 등 기본 서비스만을 직접 제공하고 필요 시 외부 재가 요양을 연계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인복지법 소관인 기존 실버타운과 달리 새로운 중산층 시니어주택을 주택법 체계 안에서 관리하려는 움직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택법이 적용될 경우 건축물의 건설 기준이 명확해지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 상품 신설 등 정책 금융 지원 근거가 마련돼 민간 사업자의 자금 조달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체계인 ‘실버스테이’ 모델이 가진 한계는 개선 과제로 꼽힌다. 장기 임대 의무 기간 준수를 비롯해 초기 임대료를 시세의 95% 이하로 책정해야 하며, 임대료 증액 역시 5% 이내로 제한되는 등 공공성 확보를 위한 촘촘한 규제가 적용된다. 이로 인해 민간 사업자의 수익성 확보가 제한적이며, 첫 입주 시점 역시 2029년경으로 예상돼 당장 급증하는 돌봄 수요에 적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통적인 보험 시장의 포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한 보험업계는 시니어케어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이 보험사가 실버주택 운영 자회사를 설립·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요양 외 부대업무 범위를 확대하면서 사업 진출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특히 부수 업무 영역에 재가요양기관 설립이 포함돼 이용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까지 가능해지면서, 보험사의 사업 모델은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기존에 판매하던 상품 구조를 요양 서비스와 직접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보험 상품이 피보험자에게 보험 사고 발생 시 정해진 금액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자회사나 제휴 기관이 운영하는 요양시설 입소권, 주야간보호센터 이용 혜택, 전문 간병인의 방문 돌봄 서비스 등 현물급여 형태로 보장을 제공하는 구조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객에게 자금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돌봄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단순한 금융상품 판매를 넘어 시니어의 건강관리·요양·주거를 아우르는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한다. ■ 부지 소유 의무와 킥스 부담, 현실 속 ‘규제 장벽’ 다만 실제 사업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 장벽은 여전히 높다. 가장 대표적인 제약은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부지 및 건물 소유 규제다. 입소 정원 30명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려면 사업자가 해당 토지와 건물을 확보해야 하는 등 사실상 자가 보유 중심의 규제가 적용된다. 시니어케어 인프라에 대한 수요는 의료 시설 접근성과 가족 방문이 용이한 서울 및 수도권 등 도심 지역에 집중돼 있으나, 이 지역에서 대규모 부지를 직접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하는 데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소요된다. 임차 방식의 시설 운영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어,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는 물론 대형 금융사조차 도심 내 시설 공급에 부담을 느끼는 구조다. 재무 건전성 지표 관리 역시 보험사들이 맞닥뜨린 난관이다. 현재 보험업계에 적용되는 지급여력제도(K-ICS·킥스)하에서 부동산 투자 및 자회사 출자에 따른 자본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사가 인프라 확충을 위해 대규모 자본을 직접 투자해 부동산을 매입할 경우, 위험 가중 자산이 늘어나 요구자본이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킥스 비율이 하락하게 된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킥스 비율 권고 기준을 기존 150%에서 130%로 낮추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으나, 업계 내부에서는 시니어케어 인프라 투자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자본 규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에서는 시니어케어 시장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현실적인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심 지역의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토지·건물 소유 의무를 임차 허용 방식으로 일부 유연화하거나, 시설 투자가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본 규제 특례 마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시니어케어 산업은 이제 금융, 부동산, 의료가 결합된 복합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의 주거 제도 법제화와 보험업계의 서비스 다각화 노력이 맞물리는 가운데,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성과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민간 사업자의 투자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규제 합리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