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농촌진흥청이 전통적인 논 관리 방식에 스마트 정밀 농업을 접목한 ‘저탄소 벼 재배 기술’을 확립하고 확산에 나섰다. 이 기술은 농가의 경영비 부담을 낮추면서도 탄소 감축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는 경제·산업 전반을 저탄소 친환경 체제로 전환하는 ‘녹색 전환(GX)’ 정책을 추진 중이며, 벼 재배 분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28.6% 감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세 가지 핵심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첫 번째 기술인 ‘벼 마른논 써레질’은 논에 물을 채우지 않은 마른 상태에서 흙을 부수고 고르는 작업을 한 뒤 모내기 직전에 물을 대는 방식이다. 기존의 ‘무논 써레질’처럼 물을 댄 상태에서 농기계를 반복 운행할 필요가 없어 에너지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농기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17.7%, 토양 내 메탄 배출량은 14.0%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또한 흙탕물 유출을 방지해 하천 생태계 보호에도 기여한다. 부유물질은 96%, 총인은 86%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술은 환경오염 저감 효과를 인정받아 2024년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환경 보전 프로그램’에 등록됐고, 2025년에는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의 저탄소 농업기술로도 등록됐다. 농업환경 보전 프로그램에서는 마른논 써레질로 재배할 경우 10아르(a)당 3만 원을 활동단가로 지원하며, 인증 마크를 부여받을 수 있다. 수량과 품질은 기존 방식과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어 농가의 부담 없이 적용할 수 있다.
두 번째 기술인 ‘다중물떼기(Multiple Aeration)’는 벼 생육 기간에 논물을 조절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높인 저탄소 기술이다. 모내기 후 유효분얼이 끝나는 시기에 물을 빼는 ‘중간물떼기’를 실시하고, 이후 이삭 패기 전후로 짧게 물을 빼는 ‘작은물떼기’를 각각 1회씩 추가로 실시한다. 2년간 4개 지역에서 시험한 결과, 기존 상시 담수 방식에 비해 메탄 발생량을 약 44%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 중간물떼기(약 21% 감축)보다 효과가 훨씬 커 저탄소 논 물관리 기술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세 번째 기술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논 물관리 이행 확인 계측기’다. 이 계측기는 카메라와 수위 감지기(센서)로 물관리 이행 여부를 자동 측정해 서버에 저장한다. 기존에는 농업인이 직접 논 사진을 찍어 이행 여부를 증빙해야 했지만, 이 기술을 활용하면 객관적인 데이터로 자동 증빙이 가능해 시간과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계측기는 1일 2회(오전·오후) 수위와 영상을 기록하며, 태양광 충전 방식으로 전력이 공급된다. 앞으로 이 데이터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기초 자료로 활용돼 탄소 크레딧 확보나 저탄소 인증제와 연계한 탄소시장 참여의 기반이 될 전망이다.
이들 기술의 보급은 이미 시작됐다. 벼 마른논 써레질 기술은 지난해 전국 8개 지역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12개 지역(60ha 이상)으로 확대 운영 중이며, 전라남도 자체 사업으로 6개 지역에서도 실시하고 있다. ICT 논 물관리 이행 확인 계측기는 올해 저탄소 농업프로그램 시범사업에 300대 이상 보급됐고, 내년에는 신기술 시범사업 및 저탄소 농업프로그램과 연계해 더 확대할 예정이다. 다중물떼기 기술은 현장 실증을 거친 후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와 연계해 보급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김병석 원장은 “저탄소 벼 재배 기술은 기후 위기와 에너지 공급망 불안 속에서 탄소 배출과 농가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라며 “이번 기술이 저탄소 농업 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발판이 되도록 현장 보급과 확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 이 세 가지 기술을 패키지화해 현장 보급을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